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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태일 동생 전순옥 "아직도 50년 전과 똑같은 노동현장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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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태일 동생 전순옥 "아직도 50년 전과 똑같은 노동현장 있다"

입력
2020.11.11 15:34
수정
2020.11.11 1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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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 인터뷰
"오빠 쓰러지자 안기부는 3,000만원 들고 나타났다"

전순옥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 한국일보 자료사진

전순옥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 한국일보 자료사진


전태일 열사의 동생인 전순옥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전태일 열사 50주기(11월 13일)를 앞둔 11일 "아직도 1970년대 당시와 똑같은 노동 현장이 존재하고 있다"고 밝혔다.

전 전 의원은 이날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 "비정규직, 하청공장에서 일하는 사람, 비조직화된 노동 현장에서 일하는 분들은 어떠한 보호도 받지 못한다"면서 이같이 꼬집었다. 그러면서 "김용균 노동자도 발전소에서 일하다 혼자 죽었고, 구의역에서도 (한 청년은) 가방에 라면 하나 들고 가다가 그것도 못먹고 죽었다"며 "지금도 하루 7명씩 산재 노동자들이 생기고 있다"고 덧붙였다.

전 전 의원은 "오빠(전태일 열사)는 처음에는 재단일을 하다 나중에는 재단 보조일을 도와주기 위해 공장의 책임을 맡게 됐다"며 "집에서는 어쩌다 한 달에 한 번 일요일에 쉬면 동네 사람들이 와서 오빠의 책, 영화, 평화시장 얘기 들을 듣곤 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전태일 열사가 책 '근로기준법'을 사게 된 뒷얘기를 들려줬다. 그는 "어느 날 아침에 아버지가 오빠 얘기를 들으면서 '근로기준법이라는 책이 있다. 하지만 너는 그 책을 보려고 생각하지 마라'라고 했다"며 "'그 책을 보기 시작하면 네 인생이 너무 힘들어진다'라고 말했다"고 소개했다.

이어 "나중에 오빠가 어머니(고 이소선 여사)한테 '내가 그 책을 당장 사야 하는데 돈을 얼마 구해 주세요'라고 했다"며 "그래서 어머니가 머리를 (잘라) 팔아서 100~200원을 오빠에게 줘서 오빠가 헌책방에 가서 그 책을 샀다"고 당시를 회고했다.

고 이소선 여사는 전태일 열사의 분신을 계기로 노동자 권익 개선에 헌신했으며, 전국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 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의회 대표로 인권 신장에 기여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6월 10일 6·10 민주항쟁 33주년을 맞아 전태열 열사의 어머니 이소선 여사 등 유공자 12명에게 국민훈장 모란장을 수여했다

전 전 의원은 "(오빠가 분신으로 죽은 다음날인) 11월 14일에 국가안전기획부(안기부)에서 찾아와서 '빨리 장례식 해야 한다'라며 걱정해주는 것처럼 했다"며 "3,000만원 가량의 돈이 가득 들어 있는 큰 가방도 들고 왔다"고 회상했다. 그는 "어머니가 '받게 되면 너희는 대학도 갈 수 있고 공장에서 일을 안 해도 되고'라고 얘기했는데, 나는 '엄마 저는 계속 공장 다녀도 괜찮아요. 엄마는 어떻게 생각하세요'라고 했다"며 "(어머니가) '나는 결정했다. 안 받기로'라고 말했다"고 전했다.

이어 "어머니는 (사람들 앞에서) 눈물을 안 보이겠다고 스스로 결심을 하시고 40년을 거리에서, 투쟁 현장에서, 경찰서 유치장에서, 감옥에서 (보냈다)"며 "경찰서에 390번을 잡혀 가셨다"고 말했다.

한편 평화시장에서 재단사로 일하던 전태일 열사는 1970년 11월 13일 근로기준법 준수를 외치며 22세의 나이에 분신해 숨졌다. 전태일 열사의 죽음으로 당시 노동자들의 비참한 현실과 열악한 노동 환경, 도시 빈민 등에 대한 문제들이 본격적으로 드러나기 시작했다.

손성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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