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가 미국 대선에서 패할 경우 불복할 거란 예상은 진작부터 있었다. 이는 ‘미국 대통령 트럼프’의 지난 4년에 대한 세간의 평가를 보여준다. 지구촌이 바이든의 승리를 환영하고 기대감을 표출하는 건 ‘트럼프의 미국’이 어땠는지를 반증한다.
바이든은 승리 수락연설에서 “미국이 다시 세계로부터 존경받게 하겠다”며 “힘이 아니라 모범을 통해 세계를 이끌어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트럼프의 ‘미국 우선주의’나 ‘신(新)고립주의’와는 다른 길을 가겠다는, 동맹 복원과 신뢰·리더십 회복을 통해 국제사회의 지도국가를 지향하는 미국 외교의 본령으로 복귀하겠다는 뜻이다. 과연 ‘바이든의 미국’은 기대해도 좋을까.
한미관계 전망은 대체로 호의적인 듯하다. 트럼프가 주한미군 감축까지 내비치며 터무니없는 인상을 압박해온 방위비분담금 협상 문제가 우선 거론된다. 한반도 비핵화 과정에서 실무협상이 중시되다 보면 문재인 정부의 역할이 더 커질 거란 기대도 있다. 동시에 바이든의 대중국 정책이 트럼프와 크게 다르지 않은 만큼 한미동맹 강화가 대중국 압박 동참 요구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적지 않다.
어림잡아본 이 같은 밑그림은 그러나 한미관계와 한미동맹을 동일한 문제로 혹은 한미동맹을 본질로 여기게 함으로써 심각한 전략적 오류를 낳을 수 있다. 사드 논란과 한일 위안부 합의 파문이 단적인 예다. 미국의 요구를 수용하지 않으면 한미동맹이 흔들리고 그 결과 한미관계가 파탄난다는 단순 논리의 결과였다. 당시 박근혜 정부의 부실·무능 외교에 대한 비판이 많지만 미국의 책임도 적다고는 할 수 없다.
2015년 2월 27일 웬디 셔먼 당시 미 국무부 정무차관은 “과거의 적을 비난해 값싼 박수를 얻을 수 있지만 이런 도발은 마비를 초래한다”고 했다. 그가 겨냥한 건 위안부와 역사교과서 문제로 일본과 갈등하던 한국이었다. 그 해 12월 한일 위안부 합의가 체결됐다. 오바마-바이든 민주당 정부 때다. 수년째 우리 경제의 발목을 잡고 있는 이른바 ‘한한령’의 시작이었던 사드 배치를 미국이 밀어붙여 공식화한 것도 마찬가지로 오바마-바이든 정부였다.
흔히 미국 정치에서 민주당을 더 진보적이라고 여긴다. 하지만 공화당에 대비한 상대적 진보가 대외정책에서 사전적 의미로 표출될 리 만무하다. 인권 문제만 해도 이를 명분 삼은 정권교체 목적의 대리전쟁이 오바마-바이든 8년간 중동·남미에서 7건 이상 진행됐는데 중국·러시아 견제용이란 평가도 많았다.
북핵 문제 해결과 대중 견제를 포함한 미국의 동북아 외교는 한미일 3각 협력체제를 동맹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데 방점이 있다. 한일 갈등 봉합에 주력하는 이유다. ‘바이든의 미국’이 국제질서 정상화에 나선다면 파리기후협약 등 다자협력체 복원이 우선이겠지만, 동맹 문제가 개입되는 순간 항시적인 긴장이 조성될 수 있다. ‘대서양 동맹’ 복원은 군사동맹인 나토 강화와 무관할 수 없고, 동북아 동맹·우호국 관계 증진은 남중국해 긴장을 피하기 어렵다.
앞으로 문재인 정부의 전략적 판단과 선택은 ‘트럼프의 미국’ 때보다 더 중요해졌다. 이수혁 주미대사의 한미동맹 70년 관련 발언이 마치 천기누설이라도 되는 듯 비난하는 풍토부터 돌아봐야 한다. 그래야 “우리는 ‘바이든의 미국’과 어떤 한미관계를 지향할 건가”를 자문할 수 있다.
양정대 국제부장 torc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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