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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비박스 찾아온 생모, 힘겨운 발길… 비난 말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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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비박스 찾아온 생모, 힘겨운 발길… 비난 말아야”

입력
2020.11.11 14:59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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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사랑공동체 교회 이종락 목사
12년 간 1800여명 영아 받아
양육하는 가정에 베이비 키트 보내기도

5일 서울 관악구 주사랑공동체 베이비박스 맞은편 드럼통 주변의 모습. 사망한 영아가 발견된 자리에 꽃들이 놓여 있다.

5일 서울 관악구 주사랑공동체 베이비박스 맞은편 드럼통 주변의 모습. 사망한 영아가 발견된 자리에 꽃들이 놓여 있다.


"베이비박스를 열지 않아도 계단을 올라오면 알람이 울리는 장치를 만들어서 다시는 아이를 제때 발견하지 못해 죽는 일이 없도록 할 겁니다."

서울 관악구 주사랑공동체 교회의 이종락 목사(66)가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 최근 논란이 된 '베이비박스 앞 영아 사망' 사건을 두고 한 얘기였다. 아이의 시신은 지난 3일 새벽 5시쯤 베이비박스와 2m가량 떨어진 드럼통 아래에서 발견됐다. 애초 아이의 엄마는 베이비박스에 아기를 둘 생각에 교회를 찾았지만, 밤 늦은 시간이라 위치를 헷갈렸는지 베이비박스가 아닌 드럼통 위에 아이를 올려두면서 비극을 불렀다.

이 목사는 2009년부터 당장 사정이 어려워 아이를 키울 수 없는 미혼모들을 위해 아기를 임시로 맡아 주는 베이비박스를 운영해 왔다. 지난 3일 안타깝게 숨진 아이는 이 교회에 찾아 온 1,802번째 손님이었다. 이 목사는 "다음날 새벽 행인의 신고를 받고 아이를 발견했지만 이미 죽은 상태였다"며 "베이비박스 바깥에서 아이가 죽은 경우는 처음이었다"며 눈물을 글썽였다.

여론은 베이비박스 맞은편 드럼통에 갓난 아이기를 올려두고 간 20대 생모 김모씨를 비정하다 비난하지만, 이 목사는 "손가락질 하지 말아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이 목사는 지난 2일 교회 폐쇄회로(CC)TV에 찍힌 생모 김씨의 뒷모습을 똑똑히 기억한다고 했다. 그는 "힘겹게 계단 하나하나를 조심스럽게 밟고 올라가는 모습을 보니 출산 직후 이곳을 찾은 게 분명했다"며 "분명 아이를 살리려고 힘들게 이곳에 온 건데 베이비박스 사용법을 잘 몰랐던 것 같다"며 안타까워 했다.


주사랑공동체 교회의 이종락 목사. 이 목사는 2009년부터 베이비박스를 운영 중이다.

주사랑공동체 교회의 이종락 목사. 이 목사는 2009년부터 베이비박스를 운영 중이다.

이 목사가 ‘아이들의 피난처’를 고민한 건 13년 전이다. 2007년 4월 찬바람이 불던 어느 날, 오전 3시쯤 교회에 전화가 걸려왔다. “아이 키울 사정이 안되니 대신 키워달라"면서 영아의 아빠가 교회 문 앞 생선 박스에 영아를 두고 간 게 계기가 됐다. 당시 생선박스에 놓인 아기는 다운증후군을 앓고 있었다. 이 목사는 해당 아이를 거뒀다. 이후 동유럽 체코의 '베이비박스'를 다룬 기사를 보고 감명을 받아 이 목사도 교회 한편에 베이비박스를 설치했다. 제1호 베이비박스는 2017년까지 총 1,200여명의 영아를 품었다. 지금은 2번째 베이비박스를 운영 중이다.

베이비박스에 온 영아들은 3~4일간 교회에서 지내다가 대부분(88%) 입양되거나 보육원으로 향한다. 물론 시간이 흘러 부모에게 돌아가는 경우(11.5%)도 적지 않다. 주사랑공동체 교회는 양육을 결심한 생모에게 한 달에 한번, 3년 동안 베이비 키트를 보낸다. 키트에는 기저귀와 생필품, 장난감, 산모의 옷 등 35만원 상당의 물품들이 담겨 있다. 이 목사는 “미혼모들이 기초생활수급자 등으로 인정 받으려면 3~4개월이 걸린다”라며 “아이를 키우려면 바로 지원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한 해 3억7,000만원~4억원의 비용은 기부, 후원으로 충당한다고 한다.

주사랑공동체 교회의 제1호 베이비박스. 2009년부터 2017년까지 약 1,200명의 영아를 받았다.

주사랑공동체 교회의 제1호 베이비박스. 2009년부터 2017년까지 약 1,200명의 영아를 받았다.

12년 간 베이비박스를 찾아오는 엄마의 모습도 달라졌다. 이 목사는 “초창기에는 10대 산모 비율이 60%였다면, 지금은 30% 수준이고 오히려 20~30대가 30% 정도로 늘었다”고 말했다.

교회 문을 두드리는 건 미혼모뿐만이 아니다. 이 목사는 “35%가 혼외 관계에서 태어난 아이들이고, 그 외에는 미등록 이주노동자가 낳은 아이 등이다”라며 ”출생 신고도 안 되는 아이들까지 보호하는 게 베이비박스를 만든 목적”이라고 강조했다.


배송을 기다리는 아기용품과 생필품이 주사랑공동체 교회 창고에 쌓여 있다. 교회는 아이를 다시 데려간 생모에게 한 달에 한번 각종 용품을 담은 베이비 키트를 보낸다.

배송을 기다리는 아기용품과 생필품이 주사랑공동체 교회 창고에 쌓여 있다. 교회는 아이를 다시 데려간 생모에게 한 달에 한번 각종 용품을 담은 베이비 키트를 보낸다.


김진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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