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사랑공동체 교회 이종락 목사
12년 간 1800여명 영아 받아
양육하는 가정에 베이비 키트 보내기도
"베이비박스를 열지 않아도 계단을 올라오면 알람이 울리는 장치를 만들어서 다시는 아이를 제때 발견하지 못해 죽는 일이 없도록 할 겁니다."
서울 관악구 주사랑공동체 교회의 이종락 목사(66)가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 최근 논란이 된 '베이비박스 앞 영아 사망' 사건을 두고 한 얘기였다. 아이의 시신은 지난 3일 새벽 5시쯤 베이비박스와 2m가량 떨어진 드럼통 아래에서 발견됐다. 애초 아이의 엄마는 베이비박스에 아기를 둘 생각에 교회를 찾았지만, 밤 늦은 시간이라 위치를 헷갈렸는지 베이비박스가 아닌 드럼통 위에 아이를 올려두면서 비극을 불렀다.
이 목사는 2009년부터 당장 사정이 어려워 아이를 키울 수 없는 미혼모들을 위해 아기를 임시로 맡아 주는 베이비박스를 운영해 왔다. 지난 3일 안타깝게 숨진 아이는 이 교회에 찾아 온 1,802번째 손님이었다. 이 목사는 "다음날 새벽 행인의 신고를 받고 아이를 발견했지만 이미 죽은 상태였다"며 "베이비박스 바깥에서 아이가 죽은 경우는 처음이었다"며 눈물을 글썽였다.
여론은 베이비박스 맞은편 드럼통에 갓난 아이기를 올려두고 간 20대 생모 김모씨를 비정하다 비난하지만, 이 목사는 "손가락질 하지 말아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이 목사는 지난 2일 교회 폐쇄회로(CC)TV에 찍힌 생모 김씨의 뒷모습을 똑똑히 기억한다고 했다. 그는 "힘겹게 계단 하나하나를 조심스럽게 밟고 올라가는 모습을 보니 출산 직후 이곳을 찾은 게 분명했다"며 "분명 아이를 살리려고 힘들게 이곳에 온 건데 베이비박스 사용법을 잘 몰랐던 것 같다"며 안타까워 했다.
이 목사가 ‘아이들의 피난처’를 고민한 건 13년 전이다. 2007년 4월 찬바람이 불던 어느 날, 오전 3시쯤 교회에 전화가 걸려왔다. “아이 키울 사정이 안되니 대신 키워달라"면서 영아의 아빠가 교회 문 앞 생선 박스에 영아를 두고 간 게 계기가 됐다. 당시 생선박스에 놓인 아기는 다운증후군을 앓고 있었다. 이 목사는 해당 아이를 거뒀다. 이후 동유럽 체코의 '베이비박스'를 다룬 기사를 보고 감명을 받아 이 목사도 교회 한편에 베이비박스를 설치했다. 제1호 베이비박스는 2017년까지 총 1,200여명의 영아를 품었다. 지금은 2번째 베이비박스를 운영 중이다.
베이비박스에 온 영아들은 3~4일간 교회에서 지내다가 대부분(88%) 입양되거나 보육원으로 향한다. 물론 시간이 흘러 부모에게 돌아가는 경우(11.5%)도 적지 않다. 주사랑공동체 교회는 양육을 결심한 생모에게 한 달에 한번, 3년 동안 베이비 키트를 보낸다. 키트에는 기저귀와 생필품, 장난감, 산모의 옷 등 35만원 상당의 물품들이 담겨 있다. 이 목사는 “미혼모들이 기초생활수급자 등으로 인정 받으려면 3~4개월이 걸린다”라며 “아이를 키우려면 바로 지원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한 해 3억7,000만원~4억원의 비용은 기부, 후원으로 충당한다고 한다.
12년 간 베이비박스를 찾아오는 엄마의 모습도 달라졌다. 이 목사는 “초창기에는 10대 산모 비율이 60%였다면, 지금은 30% 수준이고 오히려 20~30대가 30% 정도로 늘었다”고 말했다.
교회 문을 두드리는 건 미혼모뿐만이 아니다. 이 목사는 “35%가 혼외 관계에서 태어난 아이들이고, 그 외에는 미등록 이주노동자가 낳은 아이 등이다”라며 ”출생 신고도 안 되는 아이들까지 보호하는 게 베이비박스를 만든 목적”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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