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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태 여성과 트랜스젠더, '마이너한' 존재들의 우정

입력
2020.11.10 04:30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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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장원 '해피 투게더'

편집자주

단편소설은 한국 문학의 최전선입니다. 하지만 책으로 묶여나오기 전까지 널리 읽히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한국일보는 '이 단편소설 아시나요?(이단아)' 코너를 통해 매주 한 편씩, 흥미로운 단편소설을 소개해드립니다.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지난달 7일 정부는 낙태죄 유지를 결정했다.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임신 14주까지만 낙태를 허용하는 형법 및 모자보건법 개정안을 내놨다. 지난해 헌법재판소가 낙태죄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리며 법 개정을 요구한 데 따른 것이다. 임신 주수 기준만 새로 만들었을 뿐, 자기 몸에 대한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제한하긴 매한가지였다.

낙태죄 논란이 다시 분분해지면서, 나는 거울 속 내 몸을 마주할 때마다 마치 낯선 이를 바라보는 것만 같다. '임신 가능한 신체'로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이 몸은 나를 범법자로 만들 수 있다는 데 생각이 미치자 참을 수 없이 고독해졌다. 여성이 아니라면, 절대 이 고독을 이해할 수 없으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이 생각은 틀렸다. 내 몸에 대한 의사결정권이 오롯이 나에게 속하지 않은 존재는 또 있다. 트랜스젠더, 성전환자들이다. 성전환자가 성별을 바꾸려면 생식능력이 없고 물리적인 수술을 받았음을 증명하는 서류를 내야 한다. 지난 3월 지침이 일부 개정되면서 '필수 제출'이 '참고 제출'로 바뀌기는 했지만, 자기 몸에 대한 자기결정권과 재생산권과 가족구성권 앞에서 트랜스젠더들은 여전히 고독한 존재다.


서장원 작가. 문장웹진 제공

서장원 작가. 문장웹진 제공


최근 창간된 내러티브 매거진 ‘에픽’ 1호에 실린 서장원의 단편소설 ‘해피 투게더’는 이 고독을 마주한 존재들간 우정을 그린다. '나'는 얼마 전 성전환수술을 받았다. 게이인 줄 알았으나 여성이 되고 싶어한다는 걸 깨달아서다. 이혼을 앞둔 ‘해주’는 임신중절 수술을 받는다. 나와 해주, 그리고 해주의 남편 '민형'은 대학 시절 영화동아리에서 만나 한 시절을 함께 보낸 친구였다. 하지만 민형은, 트랜스젠더가 되어 나타난 나를 알아보지 못한다.

나와 해주와 민형은 한때 “자녀를 둘 가능성이 전혀 없다는” 공통점을 매개로 친밀했다. 나는 게이였고, 해주와 민형은 딩크(DINK)부부였으니. 그러나 이 균형은 내가 성전환수술을 받으며 흔들리기 시작한다. 해주는 트랜스젠더가 된 나에게 자신의 임신중절 수술에 동행해줄 것을 부탁하고, 이를 계기로 해주와 나는 '수술'을 받은 '마이너한 존재'로서 다시 연결된다.

“나는 해주가 조금 더 마이너한 사람이 되어주길 바랐다. 해주가 아이를 낳지 않기를 은밀하게 원했고, 홀로 되어 우리가 좀 더 많은 것을 공유할 수 있게 되기를 기대했다. 해주는 나의 유일한 친구였으니까.”

윤정원 전 녹색병원 산부인과 과장은 낙태죄에 대한 언론매체 기고에서 이렇게 말한다. “(트랜스젠더 담론은) 임신중지를 둘러싼 담론과 많이 닮았다. 본인의 신념과 정체성을 바탕으로 몸에 내리는 매우 개인적이고 치열한 결정이고, 질병은 아니지만 의료적 개입이 필요하다는 것. 욕구를 드러낼 때 사회의 낙인에 부딪히는 것. 그리고 당사자를 믿지 않는다는 것.”

거울 속 내 몸을 다시 본다. 내 몸이 나를 소외시킨다는, 그 생각을 공유할 마이너한 존재들을 떠올린다. 그 우정의 힘이 많은 것들을 견뎌내게 하리라.

한소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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