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강화길 '화이트 호스'
편집자주
※ 한국일보문학상이 53번째 주인공 찾기에 나섭니다. 예심을 거쳐 본심에 오른 작품은 10편. 심사위원들이 매주 화요일과 목요일 본심에 오른 작품을 2편씩 소개합니다(작가 이름 가나다순). 수상작은 본심을 거쳐 이달 하순 발표합니다.
어떤 소설은 작품을 읽고 떠오르는 질문을 마주해야만 독서가 완료된다. 강화길의 두번째 소설집 ‘화이트 호스’가 그렇다. 수록된 소설을 읽고나서 ‘도대체 뭐가 문제야’라고 질문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어떻게 모를 수 있지’ 하고 반문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화이트 호스’를 읽는다는 것은 ‘모르는 사람’과 ‘아는 사람’이 하는 이러한 질문의 낙차를 인식한다는 의미이다.
단편 소설 ‘호수’는 여성이 가진 두려움의 근간을 파고드는 작품으로, 교묘하게 포장된 억압과 폭력에 노출된 여성의 이야기를 긴장감 있게 다루며 강화길 스타일의 출발을 보여주었다.
고딕풍의 대저택 대문을 여는 듯한 ‘화이트 호스’는 작가의 두번째 소설집으로, 남다른 장르적 촉수를 지닌 작가의 인장이 고스란히 유지되는 동시에 소재적, 장르적 지평이 더욱 근사하게 확장되고 있다.
이 책에는 모르는 척하거나 몰라도 되는 권리를 가진 남자들의 세계가 있다. 그들은 기묘하게 기울어진 세계를 의아하게 보기만 하는 ‘복을 누리는’ 사람들로, 주변에서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듣지 못해도 그저 따라 웃기만 한다. 자신을 향한 시선이 달라진 이유를 알 필요가 없을 뿐더러 모르는 것을 불편해하지도 않는다. 어쩌다 부당과 차별, 억압을 알아차려도 이내 몰랐던 이전 세계로 고요히 돌아가 평온한 표정을 짓는 사람들이기도 하다.
작가는 모르는 세계, 모르는 척 해도 상관없는 특권을 가부장 체제 하의 특징으로 규정짓는다. 하지만 이런 인물이 소설적 설정으로 구현된 것이 아니라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유형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강화길 소설이 더 두렵게 느껴진다.
더불어 별다른 노력 없이도 차별과 억압의 내밀한 구조를 재빨리 파악해 버린 여자들의 세계도 있다. 그곳에서 여자들은 조금이라도 이상하게 행동하고 남들과 달라보이면 소문에 휩싸이고 나쁜 평판에 시달린다. ‘주제를 알아야지’ 하는 말을 흔히 듣고 항상 예민하다는 평가를 받으며 유난스럽고 까다로워서 좋은 날을 망치는 사람이라는 소리를 곧잘 듣기도 한다.
이처럼 강화길 소설이 주는 두려움은 장르 속성에 따른 면밀한 구성과 장치에 의한 것이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내재된 구조를 정확히 지적함으로써 발생한다. 유구한 제도와 체제의 지속을 통해, 그간의 억압과 노골적 차별을 통해 여성의 무기력과 체념이 강화되어 왔음을 깨달을 때 긴장과 공포가 두드러진다.
‘화이트 호스’ 속 소설가는 ‘나는 쓰고 싶은 이야기가 있었고, 내게 진실된 이야기였고, 그래서 썼다’고 말한다. 이 말을 작가의 목소리로 짐작한다면 쓰고 싶은 이야기, 진실된 이야기는 여성을 다룬 이야기가 되리라. 여성을 다룬 이야기는 많이 쓰여지고 있고, 앞으로 더 활발히 쓰여질 것이다. 그러나 여성의 이야기를 강화길처럼 쓰는 작가는 없다. 강화길은 유례 없는 여성 스릴러 계보를 그려가는 중이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