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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의 불복

입력
2020.11.06 18:00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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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5일(현지시간) 백악관 브리핑룸에서 개표에 불법이 있다며 연방대법원까지 소송을 끌고가겠다는 입장을 발표하고 있다. 워싱턴=AP 뉴시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5일(현지시간) 백악관 브리핑룸에서 개표에 불법이 있다며 연방대법원까지 소송을 끌고가겠다는 입장을 발표하고 있다. 워싱턴=AP 뉴시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6일 공식적으로 개표 불법을 주장하고 전면 소송 방침을 밝혀 2000년의 혼전이 재연될지 주목된다. 2000년 미 대선은 36일간 반전을 거듭한 ‘정치적 내전’이었다. 앨 고어 후보는 승복 전화를 수시간 만에 번복했다. 당락을 쥔 플로리다주가 재검표에 들어가자 1,700여표 차가 300여표 차로 좁혀졌다. 고어는 수작업 재검표를 요구했다. 어지러운 소송 끝에 주 대법원이 최종 허용했다. 그러자 연방대법원이 다시 무효화했다. 사법관할권 침해 논란도 남았다.

□2000년 플로리다주 재검표에선 첫 개표 때 잘못 판정된 표들이 무더기로 확인됐고, 전체 표를 수작업으로 재검표할 경우 고어의 승리 가능성이 예상됐다. 반면 지금 트럼프 대통령이 부정선거를 주장하는 주된 이유는 우편투표가 개표되자 판세가 뒤집어지기 시작했다는 것이어서 실체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 우리나라 4·15 총선에서 사전선거에 민주당 표가 몰린 것과 같은 현상일 뿐이다. 트럼프가 믿는 구석은 연방대법원 구성이 자신에게 유리하다는 점이다.

□낙후한 선거 제도를 유지하면서 사법이 민의를 결정하게 하는 것은 2000년에도 논란이었고 2020년에도 반복되고 있다. 20년 전 미국의 분열과 대혼란을 매듭지은 것은 결국 고어의 승복이었다. 그의 선거캠프는 끝까지 재검표와 법정 싸움을 주장했지만 고어 스스로 이를 만류하고 ‘우아한 퇴장’을 결단했다. 고어의 포기를 오판이라고 보는 이들도 있다. 하지만 불복을 용인하지 않는 정치문화가 그를 압박했을 것이다. 제도의 맹점을 보완한 게 이런 문화다.

□우리나라에선 선거가 끝나면 결과를 부정하는 일이 흔했다. 그래도 지난 총선 때 ‘사전선거 음모론’은 큰 호응을 얻지 못했다. 시민들이 깨어 있다는 증거일 터다. 부정선거를 주장해 온 민경욱 전 의원은 결국 미국으로 건너가 시위 중이다. 그 손을 트럼프 대통령이 잡은 꼴이다. 이제 아름다운 승복 문화가 깨지는 것을 걱정해야 할 나라는 미국이다. 대통령의 선거 불복을 미국인들이 어떻게 해결하는지가 미국의 수준을 보여줄 것이다.

김희원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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