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산이 예상대로 LG와 준플레이오프를 2연승으로 끝냈다. 6이닝 11K 무실점으로 언터처블 투구를 보여준 1차전 선발 플렉센, 2경기에서 ‘가을 향기’를 한껏 뿜어내며 돌아온 오재원, 준플레이오프의 기선을 제압한 페르난데스의 선제 2점 홈런, 우려했던 뒷문을 잘 닫아낸 최원준과 이영하 등 두산이 가을 야구를 참 잘한다. 그리고 강하다.
두산을 두고 ‘가을 DNA’가 있다’ ‘큰 경기 경험이 많고 강하다’는 평가를 한다. 그렇다면 큰 경기에 강하다는 건 뭘까, 고민해봤다. 시간이 지나 경험이 꽤 쌓이고 나름의 결론을 얻는다. 큰 경기는 우리가 정말 잘해서 이길 확률이 그리 높지 않다. 오히려 상대가 먼저 무너져서 이기는 확률이 훨씬 높았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1회 경기 시작부터 9회 경기 끝까지 1구, 1구 틈을 두지 않고 상대를 힘들게 압박한다. 큰 경기의 부담감은 서로 같지만 부담감에 압박감이 더해져 쌓이면 결국 버티지 못하고 실수가 나온다.
1차전은 LG 선발 영건 이민호를 효과적으로 압박했다. 2회말 2사 후 8번 정수빈은 1루쪽으로 기습번트를 댔다. 내야안타가 된다. 다음 타자 9번 오재원도 초구에 기습번트를 시도했다. 이민호가 1회말 페르난데스에게 2점 홈런을 맞기는 했지만 이후 5타자를 범타로 잡아내며 살아나는 흐름이었다. 2점을 앞서 있지만 이민호가 상승세를 타면 경기 중반이 위험했다. 정수빈과 오재원의 기습번트는 득점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하지만 마운드 위 이민호가 다시 부담감을 느끼기 시작한 것은 분명했다.
두산이 2차전을 가져갈 수 있었던 4회초 빅이닝은 김태형 감독을 필두로 한 벤치의 힘이다. 4회초 선두 타자 4번 김재환이 볼넷으로 출루한다. 다음 타자 5번 허경민의 초구, 변화구였지만 힘차게 스윙을 돌린다. 파울, 허경민은 못내 아쉬워했다. 변화구를 노리고 들어왔다고 확신할 수 있었다.
2차전이 부상 복귀전이 된 LG 선발 윌슨은 빠른 공이 완전히 회복되지 않았다. 스피드도 문제였지만 제구도 문제였다. 경기가 시작되고 7타자 연속 초구가 볼이 됐다. LG 배터리는 그나마 제구가 되는 변화구(130㎞대 초반 슬러브)를 중심으로 스트라이크를 잡고 볼카운트를 유지해 갔다. 그 결과, 3회까지 43구 중 19개가 변화구였다. 변화구가 많다는 경향이 눈에 들어왔다.
변화구를 노리고 들어갔지만 놓치고 3루 땅볼로 1루에 나간 허경민은 6번 박세혁 타석 초구에 2루를 훔쳤다. 변화구였다. 타석의 박세혁도 유리한 볼카운트인 2B-0S에서 다시 변화구를 노렸고, 적시타를 만들었다. 허경민과 박세혁의 상황은 다음 김재호의 타석에서 똑같이 재현된다. 1루 주자 박세혁이 초구 변화구에 도루를 성공시켰고, 타자 김재호 역시 변화구를 안타로 만들면서 윌슨을 강판시켰다.
윌슨은 시즌 중 1루 주자가 뛰는 것을 잡지 못해 가장 고전했던 투수였다. 20개의 도루를 허용했고 저지한 건 4번뿐이었다. 이 또한 김태형 감독과 김민재 고영민 1, 3루 베이스 코치, 주자들의 결단에 힘을 보탰다. 경기 후 김 감독은 허경민과 박세혁의 연속 도루에 대해 “윌슨의 변화구 비율(80%)이 아주 높았다. 타선을 볼 때도 장타 확률이 희박했다. 그래서 틈이 있으면 있는대로 득점권에 주자를 보내려고 했다”고 밝혔다.
결과적으로 돌아보면 LG 벤치는 윌슨 강판 후 좌완 진해수와 좌타자 오재원의 승부보다 앞선 타자 김재호 타석에서 윌슨을 내리고 정찬헌을 빨리 붙여서 갔어야 했다. 진해수와 오재원의 승부도 의도적으로 밀어치려는 오재원의 승리였다. 두산은 오재일의 2점 홈런 포함 6안타를 4회에 몰아치며 7득점을 했고, 맹추격하며 따라온 LG에게 막판 한 점의 높은 벽을 느끼게 했다.
LG 박용택의 마지막 경기가 그의 원대로 되지 않고 일찍 마무리돼 못내 아쉬웠지만 준플레이오프 두 경기, 가을 DNA가 풍성했던 두산의 야구를 보면서 지난 추억이 새삼 떠올랐을 정도로 집중할 수 있었다. 재미있었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