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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년만의 정의, 그 숨은 공로자들

입력
2020.11.06 01:00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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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36.5℃는 한국일보 중견 기자들이 너무 뜨겁지도 너무 차갑지도 않게, 사람의 온기로 써 내려가는 세상 이야기입니다.


고(故) 김홍영 검사의 아버지가 10월 8일 서울남부지검에 설치된 검 검사의의 추모패를 만져보고 있다. 연합뉴스

고(故) 김홍영 검사의 아버지가 10월 8일 서울남부지검에 설치된 검 검사의의 추모패를 만져보고 있다. 연합뉴스


10월 26일 서울중앙지검은 김대현 전 서울남부지검 부장검사를 재판에 넘겼다. 김홍영 검사가 2016년 5월 극단적 선택으로 세상을 떠난 지 4년 5개월 만이다. 김 전 부장검사는 후배 김 검사를 여러 차례 폭행한 혐의를 받는다. 부서 막내인 김 검사가 예약한 식당의 메뉴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폭언을 퍼붓는 등 인격모독을 서슴지 않았다고 한다.

장래가 창창한 33세 검사가 죽음을 택할 다른 이유는 없었다. 당연한 인과응보를 실현하는 데 이토록 긴 시간이 걸린 것은 검찰의 소극적 태도 때문이다. 김 검사 사망 직후 검찰은 김 전 부장검사의 폭행ㆍ폭언을 확인했지만, 처벌을 할 수준에는 이르지 않았다고 보고 고발하지 않았다.

검찰이 쳐 둔 두툼한 방탄벽을 깨려 그동안 많은 이들이 울고, 싸우고, 거리로 나서야 했다. 아들을 가슴에 묻은 부모는 ‘내 아들이 겪은 일을 누군가 또 당하게 할 수 없다’는 생각에 기자들 앞에서, 법정에서 부당함을 호소했다. 이 사건이 기사로 등장할 때마다 함께 분노한 여론도 검찰을 압박하는 큰 역할을 했다.

숨은 공로자도 있다. 결정적 장면마다 제 역할을 한 곳은 대한변호사협회다. 변협은 검찰에서 해임된 김 전 부장검사가 변호사 개업을 하겠다고 신고하자, 등록을 못 받겠다며 제동을 걸었다. 등록을 더 반대할 수 없는 시점에 이르자 지난해 11월 김 전 부장검사를 고발했다.

변협이 고발장을 제출하며 실타래가 풀렸다. 변협이 변호사 등록 과정에서 전관을 고발한 첫 사례였기에 주목 받았고, 아무리 잘못을 해도 형사처벌만 받지 않으면 변호사로 등록할 수 있는 현행법의 맹점도 드러났다.

변협은 수사가 지지부진하자 수사심의위원회 소집도 신청했다. 결국 유족의 신청으로 소집된 수사심의위가 기소를 권고하고 검찰이 수용하면서, 김 전 부장검사를 늦게나마 재판에 넘길 수 있었다. 공리보다 직역 이익을 앞세우며 ‘좋은 게 좋은 거’란 논리로 뭉친 전문직 카르텔 속에서, 단체가 회원을 고발하며 이렇게 강한 의지를 보여 준 것은 드문 일이다.

김 검사와 사법연수원에서 동고동락했던 연수원 41기들이 보여준 정의로운 동기애도 간과되어선 안 된다. 41기 동기회는 김 검사 사망 후 가혹행위 정황을 발견하고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촉구하는 성명을 냈다. 이 성명에 41기 전체 인원의 70%가 참가했다. 동기들은 유족의 법률대리인도 기꺼이 맡았다.

김 검사와 인연도 없는 변협이 분노하고, 전국에 뿔뿔이 흩어진 동기들이 나서는 사이, 검사 보호에 가장 큰 책임을 진 검찰 조직은 분노하지도 적극적이지도 않았다. 검찰은 고발 10개월만에 피고발인을 소환했고, 11개월이 지나서야 외부 권고를 받아 기소했다.

김 검사 어머니 말을 빌리면, 검사 임관 당시 법무부 장관은 “이렇게 훌륭하게 키워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제 국가가 키울 테니 걱정 말고 편히 계십시오”라고 말했단다. 검찰은 그 훌륭한 인재가 상사의 밥당번이나 떠맡고, 겨우 회식 메뉴 때문에 욕받이가 돼야 했던 상황을 막지도 못했다. 제대로 응징도 못했다.

범죄자가 검찰개혁을 강조하고 개인비리로 재판 받는 전직 장관이 스스로를 검찰개혁의 불쏘시개라 자평하는 상황은 분명 개탄스럽다. 하지만 왜 그런 논리가 적지 않은 국민들에게 먹혀드는지 검찰은 고민해 봐야 한다. 2008년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하는 김학의 사건 때와 많이 달라졌다고 항변하기엔, 김 검사 사건은 너무 최근 일이다.

이영창 사회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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