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숙한 비너스’에서 ‘음탕한 비너스’로!

이전기사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기사가 저장 되었습니다.

기사저장이 취소 되었습니다.

‘정숙한 비너스’에서 ‘음탕한 비너스’로!

입력
2020.11.05 14:37
수정
2020.11.05 14:37
0 0
김선지
김선지작가

신화의 옷을 입고 유혹하는 '우르비노의 비너스'


티치아노, '우르비노의 비너스', 1538, 캔버스에 유채, 119 x 165 cm, 우피치 미술관, 피렌체


중세회화에서 완전히 사라졌던 여성 누드는 이탈리아 르네상스가 꽃피우기 시작하면서, 경건한 마돈나와 성녀들을 몰아내고 다시 예술가의 작업실로 돌아온다. 보티첼리의 '비너스의 탄생'은 르네상스 최초의 누드화다. 그러나 보티첼리의 비너스는 양식화된 곡선의 아름다움을 통해 시적이고 몽환적인 관념의 세계를 표현하는 데 치중했기 때문에 선정적으로 보이지 않는다. 관능적이고 감각적인 비너스의 누드가 비로소 등장한 것은 베네치아에서다. 베네치아 화파의 대표적 화가인 조르조네와 티치아노의 비너스는 비스듬히 기대 누운 자세로 유혹하는 듯 도발적이다.

베네치아에서 관능적 비너스가 등장한 이유는 무엇일까? 왜 유독 베네치아에서 비너스의 누드화가 많이 그려진 것일까? 아마도 당시 베네치아의 시대적, 사회적 배경 때문일 것이다.


젠틸레 벨리니, '성 마르코 광장의 행렬', 1496년 중앙에 녹색 돔이 있는 성 마르코 성당, 오른쪽에 총독의 궁, 왼쪽에 청사를 배경으로 성 마르코 축제일의 행렬 의식을 그린 것으로, 15세기 후반 번영한 베네치아의 도시 풍경, 이벤트 행사, 사람들의 복장과 장신구 등을 통해 당시 삶의 모습을 보여준다.


13~15세기 베네치아는 지중해의 패권국으로서 국제무역의 중심지이자 서아시아와 북아프리카, 유럽을 잇는 거점 도시였다. 5,6세기경 이민족을 피해 이주해온 로마 난민들이 습지대 간척을 통해 세운 베네치아는 해외무역만이 살길이었고, 강력한 중앙집권체제의 국가 주도하에 바다로 진출했다. 15세기 베네치아는 선박 3,000여 척, 선원 3만6,000명을 보유한 유럽 최고의 해양강국이자 바다의 제국이었다. 막강한 해군력을 보유한 국가의 보호 아래 중개무역으로 벌어들인 엄청난 자금은 도시의 경제적 부뿐만 아니라 문화적 번영도 창출했다. 도시로 쏟아져 들어온 황금과 사치품들을 손에 쥔 부유한 귀족과 상인층은 예술가들을 열정적으로 후원했던 것이다. 콜럼버스의 아메리카 대륙 발견과 바스코 다 가마의 인도항로 개척 이후 서서히 쇠퇴하기 시작했지만, 베네치아는 18세기까지도 여전히 부유하고 화려한 문화적 국제도시로 군림했다.

그 진취적인 해양문화, 상업문화로 인해 베네치아는 다른 유럽국가들에 비해 훨씬 더 세속적이고 개방적이었고, 성문화 역시 매우 자유로웠다. 16세기 베네치아 인구 15만명 중 매춘부가 약 2만명에 이를 정도로 성산업이 호황이었고, 쾌락을 위해 유럽 각지에서 여행객들이 몰려들었다. 여기서 거둬들인 세금이 군함 12척을 운영할 수 있는 엄청난 수익을 냈기 때문에 당국에서도 공공연하게 장려했다. 보석과 사치스러운 옷으로 치장한 베네치아 매춘부는 도시의 쾌락적 문화 속에서 활발하게 활동했고, 외국인들에게는 일종의 관광 상품, 혹은 도시의 명물로 여겨졌다. 육체적 매력과 함께 우아하고 세련된 매너, 예술, 문학, 음악에 대한 높은 교양까지 갖춘 이름난 매춘부들이 귀족계층, 화가, 건축가, 작가 등과 어울리는 문화적 커뮤니티도 있었다. 이런 자유분방한 사회적 분위기에서 티치아노(Tiziano Vecellio)의 '우르비노의 비너스' 같은 작품이 나온 것은 우연이 아닐 것이다.

'우르비노의 비너스'는 르네상스 시대 귀족사회의 결혼의 의미와 기능과 연관된 작품으로 알려져 왔다. 사랑과 관능의 여신 비너스를 그린 에로틱한 그림은 부부의 성생활과 출산에 도움이 된다 하여 침실 장식용으로 종종 주문되었다. 여인의 발치에 웅크린 개는 배우자에 대한 충실함을 뜻하며, 뒷배경에 옷장을 뒤지는 소녀를 내려다보는 하녀는 모성을 상징한다. 여인이 오른손에 들고 있는 장미와 창가에 놓인 도금양은 비너스의 상징으로서, 육체적 사랑뿐만 아니라 부부의 영원한 유대를 의미한다. 요염한 자세로 기대 누운 비너스는 사랑스러움과 아름다움을 갖추고 다산의 의무를 수행해야 하는 르네상스 시대의 완벽한 아내상과 관련되어 있다.

그러나 이 르네상스 걸작에는 보다 원초적인 인간의 본능과 욕망에 관한 흥미로운 진실이 숨겨져 있다. 그림 속 여인은 비너스가 아니고, 사실은 당시 베네치아의 유명한 매춘부이자 티치아노의 모델이었던 안젤라 델 모로(Angela del Moro)다. 그녀는 로렌초 데 메디치의 손자 이폴리토 데 메디치, 티치아노 등 당대의 유명인사들과 교제했다. 티치아노의 친구이자 작가인 피에트로 아레티노는 그녀를 베네치아 최고의 창부이며, ‘자신의 얼굴에 예의의 가면을 쓰고 음탕함을 숨길 줄 아는 여자’라고 언급했다. 작품의 제목도 원래는 그저 ‘나체의 여인’이었다. 티치아노는 이폴리토 데 메디치를 위해 순전히 쾌락적 목적으로 작품을 제작했던 것이다. 그러나 원래 소유주가 요절하자 그림은 우르비노 공작에게 팔렸고, 16세기 미술사가 조르조 바사리가 여인의 정체성을 비너스로 규정함으로써 '우르비노의 비너스'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티치아노는 '우르비노의 비너스'에서 오랜 미술사의 규범을 교묘하게 비켜 갔다. ‘정숙한 비너스’라는 뜻의 ‘베누스 푸디카(Venus Pudica)’는 고대 그리스 조각가 프락시텔레스가 비너스상의 공식으로 정립한 이래 모든 예술가들이 누드화를 그릴 때 따라야 하는 서양미술의 전통이었다. 비너스 누드는 수줍은 듯 오른손으로는 가슴을, 왼손으로는 국부를 가려 행실이 바르고 순수하다는 것을 보여줘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예술이 아닌 외설로 간주되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티치아노는 여인의 가슴을 가리지도 않을 뿐 아니라 심지어 마스터베이션을 암시하려는 듯 비너스의 손가락을 구부려서 음부를 만지는 것처럼 그렸다. 게다가 한쪽으로 고개를 약간 돌려 관람자를 빤히 쳐다보는 여인의 노골적인 눈빛에는 음탕한 유혹과 에로티시즘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베누스 푸디카’의 대범한 변형이다.

이렇게 보면, '우르비노의 비너스'는 비너스의 몸을 빌려 신화로 포장한 욕정과 음란함을 내뿜는 포르노그래피이며, 여인은 상류층 남성의 눈요기를 위한 일종의 16세기 핀업 걸(Pin-up Girl)이라고도 할 수 있다. 미국 소설가 마크 트웨인은 '우르비노의 비너스'를 보고, “세상이 소장한 가장 역겹고 비도덕적이며 외설적인 그림”이라고 혹평했다. 그는 '우르비노의 비너스'가 아무리 여신의 모습으로 가장했더라도, 그 본질은 ‘유혹하는 여인’이라는 것을 정확히 간파한 것이다.

어쨌든, 르네상스에 와서 여성의 관능적인 몸을 그린 누드화의 전통이 확고히 자리를 잡았다. '우르비노의 비너스'가 신랑 신부를 위한 성과 다산을 장려하기 위한 르네상스 시대 관습의 산물이든 매춘부를 그린 포르노그래피이든 간에, 이 작품이 에로티시즘을 표방했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르네상스는 근본적으로 그리스 로마 문명을 부활시키는 것이 아니었는지도 모른다. 이상적인 고대문명으로의 복귀라는 허울 좋은 구실로 인류 역사를 일관되게 흐르고 있는 본능적인 욕망을 다시 표출하고 싶었을 뿐인지도. 사실 중세 1,000년간의 엄격한 종교적 금욕주의는 인간의 본성을 억누르고 부정하는 너무도 비현실적인 것이 아니었을까?

김선지 작가·'그림 속 천문학' '싸우는 여성들의 미술사' 저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기사가 저장 되었습니다.

기사저장이 취소 되었습니다.

김선지의 뜻밖의 미술사
한국일보가 직접 편집한 뉴스 네이버엣도 보실 수 있습니다. 뉴스스탠드에서 구독하기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