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당 패싱도 모자라 정부 패싱 일삼는 여당?
표심 정치가 부총리 사퇴 소동으로 이어져?
경제수장도 명분 찾기 아닌 경제 집중하길
편집자주
매주 수요일과 금요일 선보이는 칼럼 '메아리'는 <한국일보> 논설위원과 편집국 데스크들의 울림 큰 생각을 담았습니다. 한국일보>
이쯤 되면 여당의 폭거다. 국민들이 쥐어 준 거대 여당의 무거운 권력을 제 잇속 차리는 데 거침없이 쓴다. 당이 추구하는 가치(공정ㆍ정의), 당이 내걸고 있는 이름(민주)도 가차없이 내던진다.
숱하게 지적들이 나왔으니 개요만 보자. 꼼수를 부리지 않겠다고 공언하다 계산기를 두드려 보더니 언제 그랬느냐는 듯 위성정당을 만들어 총선 압승에 힘을 보탰다. 문재인 대통령이 당 대표 시절 만들었던 당헌 ?당 소속 선출직 공직자의 중대 잘못으로 재ㆍ보궐선거를 실시하는 경우 불출마 ?을 뜯어 고쳐, 내년 4월 서울ㆍ부산시장 보궐선거 출마를 확정했다. 당원들에게 슬며시 기대 ‘전 당원 투표’라는 형식을 택해 놓고선 "압도적 찬성"(86.6%)이라고 떠들었다. 의결요건(3분의 1이상 투표)에 미치지 않아 효력이 없다는 지적이 나오자, “의견 수렴이었을 뿐”이라고 슬쩍 피했다.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공수처장 추천위원을 빨리 내놓으라고 야당을 압박하더니, 막상 국민의힘이 2명을 내놓으니 비토권을 행사하려는 거면 법을 바꾸겠다고 으름장이다. 국민의힘이 공수처 출범을 막으려는 의도가 눈에 보이는 게 사실이라고 쳐도, 이 룰은 더불어민주당 스스로 만들었다. 추천위원 7명 중 2명이 야당 몫이고 6명 이상 찬성이 없으면 공수처장 선임이 안 되니, 정부여당 뜻대로 임명되지는 않을 거라며 야당과 국민들을 설득한 결과였다. 비토권을 행사할 수 있으니 참여하라 해놓고, 이제 와서 비토권은 안 되니 룰을 바꿀 수도 있다는 거나 다름없다.
지난 3일엔 또 하나의 사달이 났다. 1주택자 재산세 인하, 양도소득세 대주주 기준 확대 등을 놓고 정부와 티격태격하더니 결국 대주주 기준에서 기존 10억원을 고수하는 데 성공했다. 내년부터 3억원으로 낮추기로 했던 법을 뒤집은 것이다. ‘동학개미’라 스스로 칭하는 일부 주식 부자들의 민심을 여당이 끌어안겠다는 건데, 줄곧 여기에 반대해 온 홍남기 경제부총리가 ‘사표’라는 초강수를 꺼내들며 반기를 든 것이다.
앞선 사례들보다 더 우려되는 건 거대 여당의 힘이 야당만이 아니라 정부까지 뒤흔들고 있다는 점에서다. 홍 부총리가 사표를 내고 청와대가 바로 반려한 것이 짜인 각본일지는 모르겠으나, 홍 부총리가 대통령의 절대적인 신임에도 불구하고 여당의 과도한 개입으로 그동안 ‘식물 부총리’라는 굴레에서 계속 허덕여 온 것에 대한 저항이 일시에 표출된 것임은 분명해 보인다. 초기에는 그저 ‘예스맨’으로 인식됐고,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중반 이후엔 긴급재난지원금 선별 지원 등의 주장이 번번이 ‘패싱’ 됐으니까.
고위당정협의라는 틀이 있음에도 앞서 이낙연 대표가 주요 장관들을 불러 경제현안에 대해 일일이 보고를 받은 것도 곱게만 보기 힘든 측면이 있다. 협의야 당연히 필요하겠지만, 당이 모든 것에 주도권을 행사하고 그 내용이 표심에만 기대는 것이라면 정부는 당의 허수아비에 그칠 수밖에 없다.
아쉽기는 홍 부총리도 마찬가지다. 본인의 입장이 여당에 의해 번번이 짓밟히는 것에 대해 큰 아쉬움을 느끼는 건 당연지사다. 그럼에도 아무리 생각해도 납득이 안 되는 건, 주식 대주주 기준을 10억원에서 3억원으로 바꾸는 것이 경제 수장이 사표를 던질 만큼 그리 중차대한 사안이냐는 점이다.
지금 우리 경제는 그리 한가하지 않다. 3분기 성장률이 반등했다고 자평하지만 우리 주변에는 코로나19에 일자리를 잃고, 손님이 줄어 임차료를 내지 못하고, 전세난에 살 곳을 찾지 못하는 이들이 수두룩하다. 사표 소동이 정치쇼든 아니든 한낱 본인의 자존심을 지키고 명분을 살리기 위한 건 분명하지 않은가. 제 잇속만 챙기는 건 여당도, 경제수장도 똑같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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