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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故) 박지선의 비보가 전해지자 수많은 사람들이 그의 생전 인터뷰와 강연 내용 등을 온라인에 공유하며 추모하고 있다. 스스로를 ‘멋쟁이 희극인’으로 칭했던 그는 다른 사람의 약점을 잡아 웃음거리로 만들거나 자신을 비하하지 않고도 건강한 웃음을 주며 인기를 모았다. ‘못생겼다’는 말을 들어도 개의치 않고 당당했으며, 오히려 ‘자신의 외모를 사랑한다’고 말하며 다른 사람들에게 ‘자기 자신을 사랑하라’고 조언해 왔다.
특히 박지선은 자존감이 높은 연예인으로 손 꼽혔다. 지난 2015년 한 강연에 나선 그는 “전통적인 미의 기준으로 봤을 때 '못생겼다', '보기 싫다'라는 말을 많이 들었는데, 개그 집단에서는 제 외모를 긍정적으로 평가해줬다”며 “그런 소리를 많이 들으니까 자연스럽게 자존감이 높아졌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모든 사람들은 다른 사람에게 사랑 받길 원하잖아요. 그런데 나 자신조차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면 누가 날 사랑하겠냐”며 “나 자신부터 나를 많이 사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온라인에선 뒤늦게 이 강연이 공유되며 수많은 이들의 공감을 이끌어내고 있다.
그의 강연 영상을 보고 난 뒤에 지난달 ‘삶도’ 인터뷰에 나선 걸그룹 나인뮤지스 리더였던 류세라씨의 하소연이 겹쳐졌다. 인터뷰에서 류씨는 “너는 비율이 왜 그래(키가 168㎝이나 되는데)” “누가 쟤 (살) 좀 어떻게 해봐(이 소리를 안 들으려면 48㎏ 미만을 유지해야 한다)” 같은 비평을 일상적으로 들었다고 한다. 이 때문에 그는 “나조차도 ‘나는 외모가 왜 이럴까, 나는 정말 부족하구나, 나는 사랑 받을 자격이 없구나’ 싶다가 어느 순간 내가 싫어지더라”고 말했다. 일거수일투족이 점수로 매겨지는 연습생 트레이닝 시스템은 실력은 향상시킬지 모르나, 자존감은 떨어뜨리는 환경이었다고 한다. 박지선과 류세라의 삶은 같은 연예계에서도 이렇게 극명하게 대비됐다. (→기사 보기)
박지선의 단단한 자존감은 남다른 가족애로부터 시작된 것으로 보인다. 2007년 한 누리꾼이 네이버 지식인에 ‘박지선이 여자로 보이지 않는다’며 외모에 대해 비꼬는 듯한 글을 남겼다. 이에 대해 박지선의 부친은 손수 장문의 답글을 달며 박지선을 향한 애정을 과시했다. 그는 “박지선은 고등학교 2학년 때 여드름 치료를 잘못하는 바람에 피부가 심하게 아팠었다. 그때부터 피부 때문에 학교도 휴학을 할 정도로 많이 힘들었었다”며 “남자 개그맨들도 다 화장을 하고 나오는데 여자인데도 불구하고 민얼굴로 방송을 하니 더욱 못난이처럼 보인다고들 한다. 사실 박지선은 실제로 보면 못나지 않았다”고 각별한 애정을 드러냈다.
사실 그는 십 수년 앓아 온 피부병으로 늘 고통 속에 살았다고 한다. 최근엔 그렇게 좋아하던 무대에 설 수 없게 된 절망감까지 얹어졌을 듯하다. 청년들의 주요 검색어가 ‘자존감 높이는 법’이 된 지금 사회에 ‘자존감’을 강조했던 멋쟁이 희극인 박지선의 부재가 그래서 더 안타깝고 허망하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
강희경 영상사업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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