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와 출판계가 개정 방향을 두고 세게 맞붙었던 도서정가제가 큰 틀의 변화 없이 현행대로 유지된다. 첨예하게 대립했던 전자출판물에 대해서도 정부는 '추가 논의'를 전제로 한발 물러섰다. 소비자 후생을 명분으로 내세워 도서정가제 완화를 무리하게 추진하려던 정부가 출판계의 거센 반발을 넘어서지 못한 모양새다.
3일 문화체육관광부가 내놓은 도서정가제 개정안은 ▲재정가제도 변경 허용 기준을 18개월에서 12개월로 완화 ▲지역 서점을 지원하기 위해 도서관 등 공공기관 구매 도서 할인 10%만 허용 ▲웹툰과 웹소설의 특성을 고려해 정가 표시 의무를 유연하게 적용한다는 게 핵심이다. 사실상 지난 7월 문체부와 출판계 등 업계 대표들로 구성된 민관협의체가 발표한 잠정합의안 수준의 내용이다. 15% 할인율 등은 건드리지 않았고, 전자출판물의 도서정가제 적용 예외와 관련한 논의 역시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도서정가제란 출판사가 책정한 정가대로 서점에서 판매하는 제도다. 무분별한 가격 경쟁으로 출판생태계가 흐트러지는 걸 막기 위해 2003년부터 법제화 됐고, 현재는 정가의 15%(10% 가격할인, 5% 마일리지 적립 등 경제상 이익) 안에서만 할인하도록 정해놨다. 3년마다 타당성을 검토하는데 올해 11월 20일까지가 검토 시한이다.
문체부의 이번 개정안은 소비자 후생과 출판생태계 보전이란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으려는 절충점으로 보인다. 정부는 출판사들이 쉽게 정가를 변경할 수 있도록 출판유통통합전상망과도 연계하고, ‘재정가 페스티벌(가제)’과 같은 정가 인하 행사를 개최해 소비자들에게 저렴한 가격에 다양한 양서를 제공하겠다는 입장이다.
정가 판매 의무 위반 시 ‘가중 처벌’을 도입한 것도 눈에 띈다. 지금까지는 횟수와 무관하게 300만원의 과태료가 부과됐는데, 앞으로는 횟수에 따라(2차 위반은 400만원, 3차 위반은 500만원 부과) 벌금 액수를 높여 제재의 실효성을 높인다는 방침이다.
도서정가제를 둘러싼 갈등은 민관협의체가 마련한 잠정합의안을 정부가 원점 검토하겠다고 밝히면서 불거졌다. 출판계는 이를 도서정가제를 후퇴시키려는 ‘개악’으로 규정하고, 청와대 앞에서 항의 시위를 벌이는 등 강하게 반발해왔다. 소설가 한강 등 유명 작가들까지 나서 도서정가제 완화를 추진하는 정부에 반대 입장을 표명하는 등 논란이 커지자 박양우 문체부 장관은 지난 국정감사에서 “현행 유지가 기본 원칙”이라며 진화에 나서기도 했다.
문체부는 “도서정가제가 출판산업 생태계에 미친 긍정적인 효과를 고려해 큰 틀에서는 현행과 같이 유지하되, 출판시장 변화 등을 반영해 세부 사항을 조정한다”며 전자출판물의 경우도 “시장 특성을 고려한 도서정가제 적용 방안을 수립하기 위해 앞으로 충분한 시간을 두고 전자출판물 시장을 연구·조사하고 소비자와 관련 업계의 의견을 수렴하겠다”고 밝혔다. 이번 도서정가제 개정안은 앞으로 국회 논의를 거쳐 최종 확정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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