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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 한국일보>
이명박 전 대통령의 ‘명언’ 중 하나는 “도덕적으로 완벽한 정권”이다. 재임 중인 2011년 9월 청와대 확대비서관회의에서 공표하다시피 했다. “우리가 돈 안 받는 선거로 탄생한 걸 생각해야 한다. 도덕적으로 완벽한 정권인 만큼 조그마한 흑점도 남기면 안 된다.” 이 전 대통령의 ‘도덕 발언’이 전해지자, 당시 더불어민주당은 “과연 도덕불감증이 완벽한 대통령만이 할 수 있는 발언”이라고 맞받아쳤다. 세간엔 “도둑적으로 완벽한 정권”이란 풍자가 떠돌았다.
□ 그도 그럴 것이 정권 내내 권력을 누린 대통령의 측근들이 임기 말 줄줄이 구속됐다. 저축은행 비리로 친형인 이상득 전 의원과 김희중 전 청와대 제1부속실장이, 파이시티 비리로 실세였던 최시중 전 방송통신위원장과 박영준 전 지식경제부 차관 등이 유죄를 선고받았다. 결국 이 전 대통령 자신도 횡령과 뇌물 등의 혐의로 징역 17년형을 확정 판결받고 재수감됐다. ‘도덕적으로 완벽한 정권’의 허무한 말로다.
□ 이낙연 민주당 대표가 내년 서울ㆍ부산시장 보궐선거에 “가장 도덕적인 후보를 공천하겠다”고 말했다. 모두 민주당 소속 단체장의 성폭력 사건이 문제가 돼 치러지는 선거다. ‘당 소속 선출직 공직자의 잘못으로 치러지는 선거엔 무공천한다’는 당헌도 전 당원 투표 결과를 근거로 개정했다. 투표 참여율은 고작 26.4%. 유효투표율 기준에도 미치지 못했다. 5년 전 당 대표 시절 ‘무공천 당헌’ 도입을 이끈 문재인 대통령은 침묵하고 있다.
□ 민주 진영은 그간 보수당에 비해 우월한 미덕으로 ‘도덕성’을 내세웠다. 고인이 된 박원순 시장 역시 인권변호사와 시민단체 활동 덕분에 도덕성의 상징처럼 여겨졌다. 그의 치부가 드러난 지금 민주당은 당의 헌법도, 책임 정치의 의지도 뒤엎고 “가장 도덕적인 후보”를 찾아 심판 받는 것으로 책임지겠다고 한다. 막스 베버는 정치인에게 필요한 덕목으로 열정과 책임감, 균형적 판단을 꼽았다. 이 전 대통령과 민주당의 공통점이라면, 열정만 있는 정치의 폐해를 보여준 것일 테다. 정치에서 도덕은 말이 아니라 행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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