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13일은 청년 노동자 전태일이 비인간적 노동조건, 노동기본권의 억압과 이를 방치하는 우리 사회의 현실을 고발하며 분신 항거한지 50주년이 되는 날이다. 이에 지난 9월 고용노동부는 산업 민주화와 노동권익 증진에 기여한 그의 공적에 대해 정부 포상을 추진한다고 밝힌 바 있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포상 대상 검증 절차는 마무리되었고 50주기에 맞춰 국민훈장 1등급인 무궁화훈장이 수여될 것이라고 한다. 전태일의 삶과 죽음이 지닌 의미를 공적으로 재조명하고 추모하는 노력은 시민사회·노동계에 의해 꾸준히 이루어져 왔으며, 작년에는 전태일재단의 제안을 받아들인 서울시가 전태일 기념관을 개관하기도 했다. 하지만 정부 차원의 노력은 처음이 아닐까 싶다.
전태일의 희생이 한국 사회에 미친 큰 영향을 감안하면 만시지탄이지만 늦게나마 정부가 그에 공식적으로 의미를 부여한다고 하니 다행이다. 그러나 오늘날 한국의 노동 현실과 현 정부의 노동정책을 생각할 때 이번 포상 추진을 마냥 환영하기만은 어렵다.
현행 근로기준법 제11조는 법의 적용범위를 상시 5인 이상 사업장으로 제한하고 있다. 전체 사업장의 60%를 차지하는 5인 미만 사업장 노동자 350만명이 근로기준법에서 배제되고 있는 것이다. 아울러 노동조합및노동관계조정법 제2조는 다른 이를 위해 노동을 제공하고 대가를 받는 노동자임에도 근로계약 형태가 다르면 노동자의 법적 지위를 부여하지 않고 있다. 이에 따라 대리운전기사·택배 기사·학습지 교사 등 특수고용노동자 200만명이 노동자임을 원천적으로 부정당하고 있다. 제2조는 또한 350만명에 이르는 간접고용노동자를 사용하는 원청을 사용자의 정의로부터 제외함으로써 사용자와 교섭하고 협약을 체결할 수 있는 노동기본권을 심각히 제약하고 있다.
열악한 노동조건 역시 개선되지 않고 있다. 2011~2018년의 기간 산업재해로 사망한 노동자는 매해 2,400여명에 달했는데, 주로 하청·협력업체의 비정규직 노동자에게 피해가 집중되었다. 작년과 올해의 산업재해 사망자 추이도 크게 다르지 않다. 2018년 화력발전소 비정규직 노동자 김용균씨의 안타까운 사망을 계기로 산업안전보건법이 개정되었지만, 산업재해와 관련한 기업 특히 원청의 책임과 처벌을 명확히 규정하지 못함에 따라 위험이 만연한 노동환경과 위험의 외주화로부터 노동자의 생명과 안전을 보호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다.
노동자의 권리와 노동조건의 개선을 위해 애쓰다 결국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노동자도 인간이다”라고 외치며 스스로의 몸에 불을 지핀 전태일의 삶과 죽음을 온전히 기억하고 추모하는 첫걸음은 무엇보다 이와 같은 상황을 타파하는 것에서 시작되어야만 한다. 근로기준법 제11조와 노동조합및노동관계조정법 제2조의 개정,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의 제정이 ‘전태일 3법’으로 불리는 것도 그 때문이다. 노동존중사회를 천명하며 집권한 현 정부는 안타깝게도 그와는 다른 길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올 6월 고용노동부가 국제노동기구(ILO) 핵심협약 비준을 위해 필요하다며 제출한 노동조합및노동관계조정법 개정안은 제2조의 문제도, ILO 권고사항도 외면한 채 오히려 노동기본권을 제약하는 개악 요소들을 포함하고 있다. 전태일이 지금 우리 곁에 있다면 이러한 가운데 추진되는 무궁화훈장 추서를 어떻게 생각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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