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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달 거리 25분, AI 배차 앱은 산 뚫고 12분 만에 가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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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달 거리 25분, AI 배차 앱은 산 뚫고 12분 만에 가라고 한다"

입력
2020.11.03 17:10
수정
2020.11.03 17:17
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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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달 플랫폼기업들 배차 위한 'AI시스템'
"빠른 배달 위해 쓰여…신호 위반없이 불가능"
배달원들 "안전 위협 알고리즘 공개하라"요구

추석 연휴인 지난 2일 오후 서울의 한 식재료와 생활용품을 배달하는 배달 플랫폼 오프라인 매장 앞에서 라이더가 배달 운전하고 있다. 뉴시스

추석 연휴인 지난 2일 오후 서울의 한 식재료와 생활용품을 배달하는 배달 플랫폼 오프라인 매장 앞에서 라이더가 배달 운전하고 있다. 뉴시스

“애플리케이션(앱)이 자동 배차한 주문을 보면 단 12분에 배달할 수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실제 내비게이션을 보면 산 둘레길을 거쳐서 25분이 걸려요. 점심시간에 이런 배달이 걸리면 신호 위반 않고는 시간을 못 지킵니다.”

5년차 배달원 이병환씨는 요즘 들어 매일 혼란스럽다. 그가 사용하는 배달의민족(배민) 앱은 7월부터 ‘인공지능(AI) 배차’를 도입했다. 주문자의 동선과 음식 특성 등을 고려해 효율적으로 배치한다는 취지였다. 배달원이 운전 중 앱을 확인할 필요를 줄여 안전성을 높이려는 의도도 있었다. 그런데 ‘AI 사장님’의 배차는 도무지 이해하기가 어려웠다. 서울 중구에 있는 배달원에 마포구 지역 배달을 시키거나, 오목교역에서 화곡역 근처로 가는 20여분 거리 주문을 12분만에 가라고 했기 때문이다.

배달원 A씨의 배달의민족 앱 화면. 네비게이션으로 22~25분 걸리는 거리이지만, 배달시간은 12분으로 표시된다. 라이더유니온 제공

배달원 A씨의 배달의민족 앱 화면. 네비게이션으로 22~25분 걸리는 거리이지만, 배달시간은 12분으로 표시된다. 라이더유니온 제공

배민, 쿠팡이츠 등 플랫폼기업들이 AI를 활용하기 시작하자 정작 배달원들의 불만은 커지고 있다. AI가 실제 배달 동선을 최적화하기보다, 빠른 배달을 종용하는데 쓰인다는 주장이다. 3일 라이더유니온이 배민라이더스ㆍ쿠팡이츠 등 배달원 1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이들은 AI배차 이후 기존보다 하루 평균 30㎞ 더 많은 거리를 이동한다고 응답했다. AI배차시 느끼는 배달시간 압박은 10점(최고 압박) 중 7.5점이었다. AI 도입 이후 대체로 더 많이, 빨리 배달해야 한다고 느낀다는 것이다.

물론 배달원들에게도 선택권은 있다. 너무 멀거나 원치 않는 배달을 거부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배달원들은 요즘 부쩍 배차를 거부하면 다음 주문을 받기가 쉽지 않다고 느낀다. 6년차 배달원 김준영씨는 “거절 버튼을 누르면 이상하게 다음 주문이 잘 안잡히는데 왜 그런지는 컴퓨터만 알고있는 것 같다"며 "앱에 뜨는 배치 '수락률' 점수가 관련 있을거라 짐작할 뿐이다"라고 말했다.

라이더유니온은 AI 알고리즘에 따라 배달원들의 업무가 결정되는 만큼 이를 공개해야 한다고 말한다. 특히 배달시간이 배달원 안전에 직결되는 만큼, 알고리즘을 취업규칙 처럼 간주해 노동자를 향한 불이익 변경을 막아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배민 운영사인 우아한형제들은 핵심자산인 알고리즘을 공개하기 어렵고, 공개한다 해도 설명이 쉽지 않다고 말한다. 우아한형제들 관계자는 “AI배차의 배달 예상시간은 단순 직선거리가 아니라 기존 라이더들의 배달시간 데이터, 도로사정 등을 종합해 산출한 것”이라며 “라이더들이 주장하는 거절 시 불이익도 배달거부가 수 십차례 이어지지 않는 이상 발생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한편 이날 오후 고용노동부도 배달플랫폼 업체들과 만나 배달원들의 과로 방지와 안전 문제를 논의했지만, 대책은 현실과 동떨어져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고용부는 필수노동자 보호의 일환으로 50인 미만 배달종사자 고용사업장 중 휴게시설을 마련하려는 곳에 최대 3,000 만원을 지원할 계획이다. 박정훈 라이더유니온 위원장은 “편의점 수 만큼 많은 휴게실이 생기지 않는다면 어림없는 대책"이라며 "‘번쩍배달’ ‘치타배달’같은 광고를 하며 배달원들의 무리한 운전을 부추기는 구조를 바꾸는 게 핵심이다”라고 말했다.

신혜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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