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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세 안정’ 대체 언제 하겠다는 건가

입력
2020.11.02 18:00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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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인철
장인철수석논설위원

문 대통령 시정연설서 또 막연한 약속
방법ㆍ시기조차 없는 ‘공수표’ 수준
신뢰 어려운 메시지로는 불신과 염증만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달 28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2021년도 예산안 시정연설을 하고 있다. 왕태석 선임기자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달 28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2021년도 예산안 시정연설을 하고 있다. 왕태석 선임기자


“전세 시장을 기필코 안정시키겠다”는 문재인 대통령의 시정연설을 보며 청와대의 메시지 관리가 이래서 되겠나 싶은 생각을 또다시 하게 됐다. 안 그래도 경제 상황에 관한 청와대와 대통령의 메시지는 현실과 동떨어진 경우가 많아 아전인수(我田引水)니, 통계 왜곡이니 하는 말들이 많았다. 보고 싶은 면만 보고, 진실을 흐리는 통계를 함부로 인용하는 사례가 잦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번 시정연설은 해도 너무 하는 것 아닌가 하는 개탄을 금할 수 없을 정도다.

청와대로서는 다시 한번 대통령이 결연한 의지를 천명할 필요가 있다고 여겼을 수 있다. 또한 40%가 넘는 콘트리트 지지층에겐 대통령의 의지 표명이 감동적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혹시나 하는 기대 속에서 대통령의 연설을 들었던 사람들 중엔 황당하다는 반응이 적지 않다. 전세난은 당장 이번 가을ㆍ겨울에 닥친 문제임에도 대통령의 약속엔 언제 시장을 안정시키겠다는 기약도, 실효적 방법도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집권 연장되면 그때 안정시키겠다는 건가”, 누군가는 그렇게 빈정거렸다.

아예 분통을 터뜨리기도 했다. 가장 신랄한 반응은 2017~2018년 집값 잡는다는 정부 말 믿고 주택 매수를 미뤘다가 낭패를 본 사람들에게 나왔다. 한 지인은 “저 놈의 ‘기필코’ 믿다가 망했다. 그때 점 찍어뒀던 아파트 포기하는 바람에 수억 원 손해 보게 됐다”며 혀를 찼다. 경제정의실천연합 분석에 따르면 현 정부 들어 서울 아파트가격은 지난 6월 기준 52% 올랐다. 2017년초 5억원 하던 아파트가 7억5,000만원까지 오르면서, 그때 아파트 매수를 포기한 사람은 가만히 앉아 3년 만에 2억5,000만원을 손해 본 셈이 됐다.

그나마 내 지인은 투자 포기에 따른 ‘상대적 손해’에 대한 미련이지만, 그 시점에 집을 사려다 정부 말 듣고 매수를 미룬 수많은 3040세대들은 아예 내 집 마련의 꿈을 포기할 수밖에 없을 정도로 망해버렸다. 그들이 좌절의 나락으로 빠져드는 동안 문 대통령은 “부동산 가격 잡을 것을 확신한다(2017년 8ㆍ2 부동산 대책)”부터 “부동산투기와의 전쟁에서 절대 지지 않을 것(2020년 신년사)”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기필코’를 연발했지만, 결과적으로는 국민을 오도하고 기만한 셈이 됐다.

돌아보면 현 정부 부동산정책의 가장 나빴던 점은 상황을 오도함으로써 시장에 끝없이 잘못된 신호를 준 것이고, 그 신호를 믿은 수많은 피해자를 낳았다는 사실이다. 2017년엔 ‘8ㆍ2 부동산대책’으로 서민들의 주택담보대출 등을 강력 규제하는 등 수요 억제에 나서는 듯 했으나, 그해 12월엔 거꾸로 ‘임대주택활성화 방안’을 내놓음으로써 다주택 투기에 고속도로를 열어 주는 엇박자 정책으로 혼선을 초래했다.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은 ‘8ㆍ2 대책’ 당시 “집 많이 가진 분들 불편하게 될 거다. 내년 4월까지 집 팔아라”라고 경고했지만, 결국 그 말은 수요자를 속인 결과가 됐다. 지난 7월 김 장관은 시세가 뻔한데도 “(현 정부 들어) 서울 집값은 11% 올랐다”며 애써 현실을 호도하는 태도로 빈축을 사기도 했다.

현 정부 부동산정책을 모두 바꾸라는 얘기가 아니다. 적어도 대통령이 부동산 문제에 관한 메시지를 내려면 집값이 50%나 폭등한 현실, 내 집 마련의 꿈을 접게 된 수많은 3040세대의 좌절, 전세를 못 구해 거리를 전전하거나, 눈물을 머금고 비싼 월세로 들어가야 하는 세입자들의 고통을 헤아리는 진심을 담으라는 얘기다. 불편한 현실을 외면하는 식으로는 불신과 분노만 낳을 뿐이다. 국민은 지금 부동산부터 ‘추미애ㆍ윤석렬 갈등’에 이르기까지 대통령의 ‘불통(不通)’ 메시지에 한없이 답답하다.

장인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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