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사 학위 받은 육군 중사, 스타트업 CEO가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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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사 학위 받은 육군 중사, 스타트업 CEO가 되다

입력
2020.11.02 15:56
수정
2020.11.03 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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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회]김명진 이노그리드 대표 “세계 1위 헬멧 회사 물려받으라는 제안 거절하고 스타트업에 합류"

클라우드 분야의 주목받는 신생기업(스타트업) 이노그리드를 이끄는 김명진 대표는 세계 1위 헬멧업체를 물려받으라는 제안을 뿌리치고 스타트업 최고경영자(CEO)가 됐다. 흔치 않은 이야기의 출발은 억지로 들어간 군대였다. 군에서 시작된 그의 극적인 인생사는 새옹지마를 떠올리게 만드는 반전의 연속이다.

김 대표의 집안은 장교로 군에 입대하는 전통이 있다. 아버지, 큰아버지, 작은 아버지 모두 육군 장교로 제대했고 사촌들도 학군장교(ROTC) 출신이다. 당연히 그도 단국대 수학과 2학년에 재학하던 중 ROTC 선발과정에 응시했다. 하지만 어이없는 이유로 그는 학군장교가 되지 못했다. “ROTC 선발을 위한 체력장 전날에 밤새 술을 마셨어요. 잔뜩 취해서 체력장을 봤으니 당연히 탈락이죠.”

클라우드와 빅데이터, 분산컴퓨팅 전문가인 김명진 이노그리드 대표가 자사의 클라우드 기술과 서비스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왕나경 인턴기자


“무조건 간부로 입대하라”

크게 화가 난 아버지는 김 대표를 용서하지 않고 대학 2학년을 마치자마자 억지로 군에 보냈다. 장교가 되지 못했으니 그에 준하는 간부라도 돼야 한다며 하사로 입대하도록 부사관 학교에 강제 입학을 시킨 것이다. 나중에 알고 보니 아버지의 고집에는 이유가 있었다. 아버지가 생각해 둔 훗날을 위해 군에서 장교나 부사관 생활을 하며 지도력을 키우라는 것이었다. 그 뒤로 그의 삶은 급격하게 소용돌이쳤다.

부사관 학교를 마치던 날 소개로 만난 부인과 결혼을 했다. 당연히 처가에서는 반대했다. “대학도 채 마치지 못하고 4년간 의무복무를 위해 장기 입대하는 사람에게 누가 딸을 주고 싶겠어요. 중소기업을 경영하는 장인께서 반대를 많이 하셨죠.”

억지로 등 떠밀려 입대했지만 김 대표는 9년간의 군 생활을 훌륭하게 잘해 내 남다른 경력을 쌓았다. 하사관 4년차에 전군을 대상으로 4명만 뽑는 능력개발교육에 선발돼 군에 있으면서 대학을 다녔다. “덕분에 5년 차부터는 대학에서 보냈어요. 학비를 국가에서 대 주고 그만큼 의무복무를 더하는 조건이에요.”

하지만 그는 의무복무를 더하지 않았다. 수석 졸업할 정도로 공부를 열심히 해서 대학에서 장학금을 받은 덕분에 국비 지원을 받지 않아 의무복무 조항이 면제됐다.

군과 학교 생활 모두 열심히 한 덕분에 중사로 제대할 무렵 주임원사까지 갈 수 있는 장기 근무 제의를 받았다. “주임원사는 장성에 준하는 대우를 받아요. 관용차가 나오고 헬기도 탈 수 있죠.”

김 대표는 그런 제안을 마다하고 28세때 중사로 제대했다. “공부를 더 하고 싶었어요. 대학원에 진학해서 교수가 되는 것이 꿈이었죠.” 그러나 일은 생각처럼 풀리지 않았다.

아들의 군 생활을 눈 여겨본 아버지는 제대한 김 대표에게 뜻밖의 제안을 했다. 아버지의 사업을 물려받으라는 제안이었다.

이노그리드가 개발한 클라우드 관리 솔루션 프로그램 '클라우드 잇'. 이노그리드 제공


“세계 1위 헬멧업체 물려받아라”는 기자 출신 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인 부친의 제안 거절

그의 아버지 김재철씨 또한 특출한 이력을 갖고 있다. 1960년대 한국일보에서 기자로 일한 아버지는 신문사를 그만둔 뒤 세계 1위가 되는 오토바이 헬멧 제조 회사를 공동 창업했다.

군 생활을 지켜본 아버지는 자식에 대한 믿음이 생겨 회사를 물려줄 테니 말단 사원으로 입사해 공장에 가서 밑바닥부터 배우라고 제안했다. 6개월간 아버지 회사에서 일을 햔 김 대표는 교수가 되겠다는 꿈이 확실했던 만큼 제안을 거절했다. 사장 자리는 공동 창업자에게 넘어갔다. “너무 힘들게 일하는 아버지를 보고 사업을 하지 않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밤낮으로 사업에 몰두한 아버지는 은퇴 1년 전에 한쪽 눈을 실명했다. 더 이상 사업을 할 수 없게 된 부친은 60세때 은퇴하자마자 볼링을 시작했다. 사업에 쏟은 열정을 볼링에 쏟아서 실력이 일취월장해 전국체전에서 숱하게 메달을 따며 장애인 국가대표가 됐다. 이후 아버지는 2014년 인천 장애인 아시안게임에 국가대표 볼링 선수로 나가 68세 나이에 금메달을 따며 최고령 선수가 됐다. 이후 아버지는 장애인 체육에 기여한 공로로 2017년에 체육훈장 백마장까지 받았다.

이후 김 대표는 대학원에서 컴퓨터공학을 공부하기 위해 호주 시드니대학으로 유학을 떠났다. 석사 과정도 만점으로 마치고 학위를 받은 뒤 건국대에서 클라우드 기반 빅데이터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아주 열심히 공부를 했어요. 연구원 생활 1년을 포함해 11년간 클라우드와 빅데이터, 분산컴퓨팅 관련 110편의 논문을 썼죠. 이 가운데 과학기술논문인용색인(SCI)급 국제학술지에 8편의 논문이 실렸어요.”

연구 논문이 말해주듯 김 대표는 국내에서 내로라하는 클라우드와 빅데이터, 분산컴퓨팅의 전문가다. “원래 하고 싶었던 것은 슈퍼컴퓨팅이었어요. 슈퍼컴퓨팅은 모든 데이터를 집중해서 최적의 결과물을 끌어내는 것이고 분산컴퓨팅은 반대로 여러 곳에서 데이터를 나눠 처리해 집단의 능력을 발휘하는 것이죠. 2006년에 아마존이 클라우드 서비스를 시작하면서 분산컴퓨팅에 관심을 갖게 됐죠.” 이제 분산컴퓨팅은 4차산업혁명시대에 디지털 전환을 위해 꼭 필요한 클라우드 서비스로 대표된다.

김 대표는 치열한 연구업적에 힘입어 건대 정보통신대학원에서 교수를 맡아 꿈에 그리던 강단에 섰다. 하지만 그 기간은 길지 않았다. 그때 창업자였던 조호견 이노그리드 전 대표를 만나면서 인생 여정이 다시 한 번 바뀌었다. “이노그리드와 프로젝트를 같이 했는데 조 대표가 연구소를 차려줄 테니 일을 같이 하자고 제안했어요. 원하는 연구를 마음껏 할 수 있겠다는 기대에 수락했죠.”

김명진 이노그리드 대표는 데이터산업에서 스타트업과 중소기업의 경쟁력을 키우기 위해 관련 연합체인 코리아데이터얼라이언스도 만들었다. 왕나경 인턴기자


110편의 논문 발표, 연구소장으로 합류해 대표까지 올라

그렇게 김 대표는 2015년 이노그리드에 연구소장으로 합류했다. “회사에 들어가서 보니 밖에서 보이지 않던 부족한 것들이 보였어요.” 우선 연구원 12명을 새로 뽑아 개발력을 보강했고 정부와 기업을 상대로 자체 개발한 소프트웨어의 우수성을 알리는 마케팅까지 했다. 그 결과 입사 4개월 만에 이사가 되고 2017년 말에 영업까지 총괄했다.

이노그리드가 다양한 여러 개의 클라우드 솔루션을 섞어서 사용하는 하이브리드 멀티클라우드 솔루션으로 나가야 한다는 전략도 그가 세웠다. 급기야 2018년 12월에 공동 대표로 올라선 뒤 지난해 단독 대표가 됐다. 창업자인 조 전 대표는 회사를 나가 크라운게임즈와 소리바다의 대표를 겸하고 있다.

그는 대표를 맡으면서 “사단장 스타일의 CEO가 되겠다”고 선언했다. 뒤에서 관리 감독만 하는 것이 아니라 연구나 영업현장의 최일선에서 직접 뛰겠다는 선언이다. 실제로 그는 고객이 될 만한 기업들을 직접 찾아다니며 만났다.

자체 개발한 ‘클라우드잇’ 솔루션으로 국가 인증을 따내고 2018년과 2019년 40개 기업에 클라우드 서비스를 제공하며 회사 안팎에서 능력을 인정받았다. 한국전력공사, 무역진흥공사, 코트라, 인천국제공항공사 등 주요 공사들과 부산, 울산, 나주 등 지방자치단체들도 이노그리드의 클라우드 솔루션을 사용하게 됐다. 클라우드잇은 올해 7월 국가에서 인정하는 우수연구개발제품으로도 선정됐다. 이렇게 되면 공공기관에서 특정 기업을 지목해 공급 계약을 체결하는 수위 계약이 가능하다. “국내에서 이렇게 인정받은 유일한 프라이빗 클라우드 솔루션입니다.”

그 바람에 이노그리드의 성적표는 급반전했다. 2015~2018년 연 30억 수준이었던 매출이 지난해 86억원으로 2배 이상 뛰었다. “올해 목표는 150억원입니다.”

부채비율도 대폭 감소했다. “2017년 회사의 재무제표를 보면 수익이 거의 없고 부채비율이 3,000%였어요. 오죽하면 아버지가 회사를 맡지 말라며 반대했어요. 지금은 부채비율이 85%까지 떨어졌고 지난해 처음으로 흑자 전환했어요. 지금은 아버지도 아들의 경영능력을 인정하는 눈치예요.”

김 대표는 빅데이터 사업을 위해 자회사 이노커스도 설립했다. “이노그리드가 클라우드 기반의 서비스를 제공하고 자회사인 이노커스는 빅데이터 사업을 총괄하는 전략입니다. 이노커스는 지난해 설립했는데 벌써 흑자를 내고 있습니다.”

그는 단순히 이름 뿐인 대표가 아니다. 처음 대표를 맡았을 때는 지분이 하나도 없었지만 사재를 투자해 지분을 확보하며 최대 주주가 됐다. “끝까지 회사와 함께 할 겁니다. 회사가 잘 된다고 팔아서 떼돈 벌 생각이 없어요.”

그의 다음 도전은 퍼블릭 클라우드 사업이다. 아마존이나 구글처럼 데이터센터를 지어서 물리적인 서비스까지 직접 제공하는 것이다. “인공지능(AI)으로 주요 기능을 관리하는 AI 스마트 클라우드 센터를 만드는 것이 목표입니다.’

이를 위해 김 대표는 ‘코리아데이터얼라이언스’(KDA)라는 협의체도 만들었다. 여기에 AI와 빅데이터, 클라우드 관련 51개 기업들이 모여 있다. KDA는 집단지성을 발휘하기 위한 모임으로 국내 최초의 데이터 산업 발전을 위한 연합체다. 작은 기업들이 공동으로 사업을 수주하고 공동으로 이익을 나누는 방식이다.

대외 협력도 강화할 예정이다. “마이크로소프트(MS) 아마존 KT 등과 클라우드 관련 협약을 맺었습니다. 이들의 클라우드 서비스도 가져다가 팔 수 있게 됐죠. 인텔하고도 제휴를 맺을 예정입니다. 인텔의 기술을 AI 스마트 클라우드에 적용할 계획입니다.”

김 대표는 2년 뒤 상장을 목표로 하고 있다. “아버지 사업 물려받지 않은 것을 한 번도 후회하지 않았어요. 2년 동안 상장 준비를 해서 보란듯 기업 공개를 할 예정입니다.”

최연진 IT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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