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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풍이 지나고 난 뒤

입력
2020.11.03 04:30
2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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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중부 다낭시의 한 주민이 지난달 28일 닥친 태풍 '몰라베'로 물에 잠긴 자신의 집 옥상을 잡고 발버둥치고 있다. 현지 교민 제공

베트남 중부 다낭시의 한 주민이 지난달 28일 닥친 태풍 '몰라베'로 물에 잠긴 자신의 집 옥상을 잡고 발버둥치고 있다. 현지 교민 제공

“중부지역 태풍과 산사태로 현재까지 실종된 인원만… 흑흑.”

지난달 29일 베트남 하노이 농업농촌개발부 청사에서 진행된 ‘한국 정부 수해지원금 30만달러 기부식’ 현장. 차분하게 통역하던 주베트남 한국대사관 소속 현지 직원이 갑자기 울먹이며 말을 멈췄다. 지난 한달 사이 두 번의 기록적 태풍과 5차례의 집중호우가 할퀴고 간 베트남이다. 그의 지인들 역시 20년 이래 최악의 천재지변이라던 홍수 앞에 수 없이 다치고 고통 받았을 터이다.

직원의 모습에 17년 전 태풍 ‘매미’가 한반도에 상륙했을 당시 밤새 고향집의 피해를 걱정했던 내 과거가 투영됐다. 먹먹하고 미안했다. 아픔이 가득한 현지 보도들을 나는 무덤덤한 현장 기사로만 처리했다. “동남아 태풍이 한국에는 영향을 주지 않고, 우리 교민의 피해도 없다”는 선택적 정보가 전부였다. 한 인간으로서 공감하고 다가서기보다 물질적 경중만 따진 셈이다.

한국 정부와 베트남 교민사회는 달랐다. 한국은 인도-태평양 4개국 안보협의체인 ‘쿼드’에 베트남을 포함시키려는 미국과 일본ㆍ호주 정부보다 먼저 30만달러의 지원금을 베트남 정부에 직접 전달했다. 현지에 진출한 자국 단체를 통하거나 구두 약속만 한 것이 아니라 빠른 지원으로 베트남의 아픔을 위로한 것이다. 한국국제협력단(KOICAㆍ코이카)도 2만달러를 먼저 중부지역 여성동맹에 기부해 재난에 취약한 여성들부터 돕고 나섰다.

베트남인들과 한 데 어울려 살아가는 교민들의 마음도 이어졌다. 박항서 베트남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의 3,000달러 기부를 시작으로 김경록 아이마르(I-mar) 대표는 3억동의 지원금을 수해 복구로 고생하는 군인들을 위해 내놓았다. 김석환 BTB메디컬 그룹 대표와 신동열 재한인 섬유협회장 등도 지난 한달간 마스크 10만장과 8억동의 지원금 및 의류 4,000여점을 중부지역에 기부했다.

“힘들 때 손을 잡아 준 한국과 우리는 더 가까워 질 것이다.” 수해지원금을 받아 든 베트남 농업부 차관의 말에는 진심이 듬뿍 담겨 있었다. 비가 온 뒤엔 언제나 그랬듯 땅이 더 굳는다.

박노완(왼쪽 세번째) 주베트남 한국 대사가 지난달 29일 베트남 농업농촌개발부 청사에서 한국 정부의 수해지원금 30만달러를 전달하고 있다. 하노이=정재호 특파원

박노완(왼쪽 세번째) 주베트남 한국 대사가 지난달 29일 베트남 농업농촌개발부 청사에서 한국 정부의 수해지원금 30만달러를 전달하고 있다. 하노이=정재호 특파원


하노이= 정재호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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