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의 기독교 정신을 체험하는 좋은 방법이 미술관을 방문하는 것이다. 중세의 예술작품들은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성경의 내용을 묘사하고, 영혼의 구원을 주제로 하고 있다. 16세기경 르네상스가 꽃피면서 그리스, 로마시대의 인본주의 전통이 되살아나고, 근대로 오면 인간 중심의 세속적인 다양한 모습들이 그려진다. 이러한 예술작품들에서 서양의 정치와 문화, 역사의 변천 과정을 엿볼 수 있겠다.
종교의 딜레마는 하나의 믿음을 유일 진리로 간주할수록 다른 믿음에 적대적이고, 현세보다는 사후 상벌을 중시하여 극단적 행동마저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유럽에서 종교전쟁과 박해의 긴 역사를 뒤로하고, 이제는 계몽(Enlightenment)을 통해 정교 분리, 관용, 종교의 자유 등의 가치가 뿌리를 내렸다. 청교도 배경을 가진 미국은 좀 더 보수적인 분위기를 풍기고, 대통령이 “신이시여, 미국을 축복하소서(God bless America)!”라는 발언을 자주 한다. 그래도 관용의 태도를 흔히 볼 수 있는데, ‘메리 크리스마스(Merry Christmas)’라는 기독교적 인사 대신 ‘해피 홀리데이스(Happy Holidays)’라고 하는 것이 한 예다.
서양사회가 세속화되어 예배에 참석하는 이들은 적고, 멋진 교회 건물에 물이 새도 공사비가 마땅치 않다. 그래도 부활절이나 성탄절에는 옷을 차려입은 사람들이 주변 교통이 마비될 정도로 교회를 찾아오고, 세상을 떠나면서 교회에 유산을 남기는 이들도 있다. 그러면 그 돈으로 무엇을 할지 교인들이 모여 회의를 하는데, 아프리카 전쟁 희생자 가족을 데려다 돕는 교회 차원의 난민사업도 있었다. 시카고 근교 우리 집 앞 교회에서 2000년 라이베리아 내전에서 부모를 잃었지만 지금은 어엿하게 성장한 청년들을 만났다.
내가 그 교회를 갔을 때는 핼러윈(Halloween) 시즌이었다. 핼러윈은 10월의 마지막 날로 귀신 복장의 아이들이 초콜릿을 얻으러 동네를 돌아다니지만(Trick-or-treating), 그 시즌은 이미 9월 중순부터 시작된다. 교회에서는 뜰 위에 호박을 쌓아놓고 파는데, 동네사람들이 그것을 사서 속을 파내 파이를 만들어 먹고, 껍데기로는 유령 얼굴을 조각하여 그 안에 촛불을 켜놓는 ‘잭 오 랜턴(Jack-o’-lantern)’을 만들어 집을 장식한다. 귀신들의 축제 핼러윈을 교회에서 즐기는 모습이 나에게 낯설었지만, “하나님은 호박”이라는 목사님의 설교는 더 놀라웠다. 호박을 팔아 불우 이웃을 돕는 것이니, 호박이 이웃 사랑이고 호박이 바로 하나님이라는 것이다.
한국에서 그 설교를 들었다면 어땠을까 피식 웃음이 나왔다. 누구 못지않게 종교를 좋아하는 한국인들이지만, 착한 심성과 실속을 따지는 감각으로 타국들이 보여주던 종교 갈등을 거의 겪지 않았다. 대신, 한국의 종교는 경쟁사회에서 개개인의 현실문제 해결과 안녕에 기여한다. 대학 입시일에 교회나 절로 기도하러 가는 학부모들의 간절함은 서양에서는 보기 힘든 광경이다. 하나님은 개인의 성공을 도와주고 경쟁에 지친 이를 위로할 뿐만 아니라, 진짜 ‘호박’의 형상으로 이웃과 더불어 살라는 가르침을 주고 있는지도 모른다. 종교와 세속, 나와 이웃과의 관계에서 교묘한 줄타기를 하는 달인들이 필요한 시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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