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고 긴 미국 선거의 계절이 끝나는 날이 왔다. 연초에 시작된 예비선거에서부터만 해도 9개월의 대장정이다. 선거전이 막바지에 들어서면서 정치 뉴스를 피해보려고 노력하지만, 맞춤형 미디어 시대 선거운동은 그럴 틈을 주지 않는다. 우편함을 열면 죄다 선거 홍보물이고 유튜브에서 뮤직 비디오 하나 보려 해도 선거 광고를 봐야 한다. 내가 사는 위스콘신주가 경합 지역이어서 더 유난스럽다. 10월 중순까지 두 후보가 위스콘신에서 TV 광고에 쓴 돈만 1,000억원이 훌쩍 넘는다니, TV를 켤 때마다 선거 광고를 봐야 하는 주민들의 정신건강이 염려스럽다. TV 광고에 쓰는 돈은 선거 비용의 일부에 불과한데, 두 후보의 대선 비용이 7조원이 넘어 2016년의 세 배가 넘을 것이라고 한다. 이 천문학적인 비용이 누군가의 지갑을 두둑하게 할 텐데, 그 일부라도 코로나바이러스로 힘든 지역 경제로 흘러들었으면 하는 순진한 생각도 해본다.
중요 쟁점에서 두 후보의 차이가 극명한 지금, 남은 이슈는 투표하고 싶은 모든 유권자가 문제없이 투표할 수 있을 것인지, 모든 표가 제대로 개표될 것인지, 그리고 선거 결과에 후보와 지지자들이 승복할지로 요약되는 것 같다. 이렇게 쓰고 나니 과연 이게 민주주의 원조국이라는 나라의 선거인지 아니면 제3세계 어느 독재국가 선거인지 의심스러울 지경이다. 하지만 벌써 민주당 지지자들은 트럼프 대통령과 공화당이 체계적 투표 억압과 부정투표 의혹 제기를 통해 선거를 훔치려 한다고 의심하고 대책을 준비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의 열성 지지자들이 선거 결과에 불복해 곳곳에서 난동을 일으킬 것이라는 염려가 커지면서 주 방위군이 대비 중이라는 뉴스도 들린다.
민주주의의 기본이 자유롭고 공정한 선거일 텐데 미국 민주주의가 어쩌다 이런 지경에 이르렀는지 의아한 독자들도 있을 것 같다. 트럼프 대통령과 공화당의 양태가 유난히 노골적인 것은 사실이지만, 미국의 투표 억압과 부정선거의 역사는 길다. 린든 존슨 대통령 전기 작가로 유명한 로버트 캐로는 선거 결과를 도둑질하는 게 미국 정치사의 중요한 일부라고 말하는데, 가령 그는 책에서 존슨 대통령이 1948년 텍사스주 상원의원 선거를 지역 선거 관리인을 매수해 훔치는 과정을 상세히 묘사하고 있다. 존슨은 이 선거를 87표 차이로 이겼는데, 패배한 스티븐슨은 4년 전 같은 방법으로 존슨을 이기고 상원의원이 되었다.
투표 억압의 역사는 더 길고 어둡다. 미국 남부에서 인종 분리를 통해 흑인 인권을 탄압했던 짐 크로 법의 중요한 부분이 투표세, 문해력 시험 등을 통해 흑인 참정권을 제한하는 것이었다. 1960년대 흑인 인권운동의 중요한 요구가 자유롭게 투표할 권리였고, 그 큰 성취가 1965년 투표권법이었던 데에는 이런 배경이 있다. 이 법안을 통과시키고 서명한 사람이 존슨 대통령이라는 것은 역사의 아이러니라고 할까?
이번 선거는 미국이 아직도 그 어두운 선거 정치사의 긴 그늘에서 살고 있음을 보여준다. 11월 첫 화요일, 공휴일도 아닌 이날, 얼마나 많은 사람이 코로나바이러스와 쌀쌀한 날씨, 유권자 사전 등록제, 그리고 긴 줄 등의 장애물을 넘고 민주시민의 기본적인 권리이자 의무인 한 표를 행사할지, 그리고 그들이 어떤 선택을 할지, 오늘 밤 많은 사람이 초조한 마음으로 지켜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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