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미국 대선을 앞두고 한미관계를 견제하는 등 대남 비난 목소리를 높이되 남북관계의 끈을 놓지 않는 이중적 메시지를 잇따라 내고 있다. 서훈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의 미국 방문을 이례적으로 비난한 북한은 서해 공무원 피격 사건에 대해선 남측에 우선적 책임이 있다면서도 남북관계를 파국으로 몰지 않으려는 뜻도 분명히 했다. 미국 대선을 앞두고 한반도 정세의 불확실성이 커지는 만큼 남북 관계를 관리하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특히 미 대선에서 한미 동맹을 중시하는 조 바이든 민주당 후보의 당선에 대비하는 포석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남한 탓"이라면서 "시신 수색 노력, 필요한 조치 취하겠다"
북한은 30일 조선중앙통신 보도를 통해 "서해 공무원 피격 사망 사건은 남측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상황임에도 주민을 통제하지 못한 데 우선 책임이 있다"고 주장했다. 남측 주민이 북한 수역에 침입한 의도를 모르는 상황에서 북한군의 사살 대응은 불가피했다는 논리다. 북한은 그러면서도 "뜻하지 않은 사고가 우리 주권이 행사되는 해상 수역에서 발생한 것만큼 미안한 마음도 남측에 전달 했으며 내부에서 터져나오는 각종 험담을 묵새기며 최대의 인내로 자제해왔다"고 주장했다. 북한은 "시신 수색을 위해 노력했지만 결실이 없었다"며 "앞으로도 필요한 조치를 지속적으로 취하겠다"고 덧붙였다.
북한의 메시지는 서해 공무원 피격 사건 책임을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사과로 마무리하려는 뜻으로 읽힌다. 남북 공동조사를 통한 진상규명은 사실상 거부한 셈이다. 다만 "필요한 조치를 취하겠다"고 밝혀 서해 군 통신선 재가동 등 남북관계 복원을 위한 가능성은 열어놓았다. 국방부와 통일부는 이날 "북한의 사실 규명과 해결을 위한 노력이 조속히 이루어지기를 바란다"며 "남북 간 소통을 위한 군 통신선의 우선적 연결을 촉구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국민의 힘 직접 겨냥...국제 인권문제 비화 불쾌감
북한은 특히 서해 사건이 국제 인권 이슈로 번질 가능성을 경계하는 모습도 드러냈다. 통신은 "국민의힘을 비롯한 남조선의 보수세력들은 계속 만행이니, 인권 유린이니 하고 동족을 마구 헐뜯는다"면서 유엔에서 국제인권법 위반 여부를 따져야 한다는 국내 보수 여론을 맹비난했다. 그러면서 "시신훼손은 남조선 군부에 의해 이미 진실이 드러났다"면서 시신이 아닌 부유물만 태웠다는 주장도 재차 강조했다. 군 당국이 초기 발표와 달리 시신 소각은 단언적 표현이었다며 '추정'이라는 태도로 선회한 것을 근거로 인권 문제가 아니라는 주장을 편 것이다. 조한범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미국 대선에서 조 바이든 민주당 후보가 당선되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달리 북측에 인권 문제 해결부터 요구할 것"이라며 "서해 사건이 유엔의 주요 논의 테이블에 오르면 북한 입장에선 피곤해지기 때문에 사전 차단에 나선 것"이라고 분석했다.
북한, 미 대선 앞두고 한미간 대북 공조에 촉각
이처럼 남북 관계를 관리하려는 북한의 메시지가 미 대선 결과에 촉각을 곤두세우면서 조 바이든 민주당 후보의 당선을 대비하는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북한은 전날 서훈 청와대 안보실장의 미국 방문에 대해서 "상전에 굽신거리는 것"이라며 이례적으로 맹비난하며 남북관계를 '우리민족끼리' 풀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 교수는 "바이든 후보가 당선되면 한미동맹 가치를 중시할텐데 남측 정부가 한미동맹 보다 '우리민족끼리'를 우선 생각하라는 압박성 메시지"라며 "북한도 미국 대선 이후 전략적 노선을 정해야 하는 시기가 온 만큼 앞으로 여론전을 계속 펼 것"이라고 예상했다.
다만 북한이 내년 1월 8차 당대회를 열어 대미 전략을 확정지을 때까지 남북관계의 획기적인 상황 변화는 없을 것으로 보인다. 외교부 당국자는 이날 "한·중·일·러 모두 북한이 당장 판을 흔들진 않고 미국 대선을 지켜보며 한동안 관망세를 이어갈 것이라고 보고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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