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이 국민과의 약속을 어기고 내년 4월 서울ㆍ부산시장 보궐선거에 후보를 공천하기로 29일 확정했다. ‘당 소속 공직자의 잘못으로 재ㆍ보궐 선거를 치르면 후보를 내지 않는다’는 당헌은 뜯어 고치기로 했다.
민주당은 “후보를 공천해 시민의 심판을 받는 게 책임 정치”라는 명분을 댔다. 그러나 민주당이 앞세운 '책임'은 편의적이다. 당헌에 새길 정도로 굳게 다짐한 '무공천' 약속을 끝까지 지키는 것 역시 책임이기 때문이다. 서울· 부산시장을 야당에 내주면 2022년 대선이 불리해진다는 정치적 계산 때문에 '선거에 이기는 게 책임'이라고 말을 바꾼 것이라는 의혹이 짙다.
서울ㆍ부산시장 보궐선거는 민주당 소속이었던 고(故) 박원순 전 서울시장과 오거돈 전 부산시장의 성추문으로 실시되며, 800억원대의 국가 예산이 든다.
이낙연 “후보자 내지 않으면 유권자 선택권 제약”
이낙연 민주당 대표는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에서 “오래 당 안팎의 의견을 들은 결과, 후보자를 내지 않는 것만이 책임 있는 선택이 아니며 오히려 공천으로 심판을 받는 것이 책임 있는 도리라는 생각에 이르렀다”고 말했다. “후보를 내지 않는 것은 유권자 선택권을 지나치게 제약한다는 지적도 들었다”는 이유도 꼽았다.
이 대표는 “후보 추천의 길을 여는 당헌 개정 여부를 전체 당원 투표에 부쳐 결정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민주당 열성 당원들은 서울ㆍ부산시장 선거에 후보를 내야 한다고 주장한다. 결국 '당원의 결정'을 명분으로 공천의 걸림돌이 되는 '무공천 당헌'을 폐기 처분하겠다는 것이다.
이 대표가 마음 먹은 이상, 무공천 당헌 개정은 일사천리로 진행된다. 민주당은 이번 주말인 31일부터 이틀간 전당원 투표를 실시한 뒤 당무위원회와 중앙위원회를 거쳐 당헌을 개정한다. 투표는 ‘후보를 내기 위해 당헌 개정이 필요한데 찬성하십니까’라는 질문에 찬성(O) 혹은 반대(X)를 답하는 방식이다. 이 대표는 다만 서울ㆍ부산시장 보궐선거를 초래한 데 “국민 여러분께 거듭 사과 드린다. 특히 피해여성께 마음을 다해 사과 드린다”고 했다.
민주당 “미니 대선 포기 못해”
내년 서울ㆍ부산시장 선거는 2022년 대선 판도를 좌우할 ‘미니 대선’으로 불린다. 염치 없다는 비판을 들어도 선거는 포기할 수 없다는 게 민주당의 판단이다. 민주당은 무공천 당헌이 2015년 문재인 대통령의 당대표 시절 만든 ‘정치개혁안’이라는 점에서 개정을 고심하는 제스처를 취했다.
민주당은 21대 총선을 앞둔 지난 3월에도 같은 과정을 밟아 ‘비례대표 전용 정당을 만들지 않겠다’는 약속을 뒤집고 더불어시민당을 창당했다. 민주당은 총선을 앞두고 ‘다주택자를 공천에서 배제하겠다’고 했지만, 당선자 4명 중 1명이 다주택자로 나타났다.
민주당의 '무공천 포기'라는 무리수를 두기까지, 당내에서 다른 의견은 거의 나오지 않았다. ‘내부 비판’에 각종 제재를 가하는 풍토 때문이다. 이재명 경기지사가 지난 7월 “정치는 신뢰가 중요하다. 서울ㆍ부산시장 재보궐선거에 무공천 해야 한다”고 했을 때, “왜 지금 그런 말을 하나”(이해찬 전 대표) “미리 싸우는 게 왜 필요한가”(이낙연 당시 당대표 선거 후보)는 질타를 받은 게 대표적이다.
민주당 ‘소신파’로 불렸던 금태섭 전 의원은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설치를 위한 국회 표결 과정에서 당론을 따르지 않았다는 이유로 징계를 받았고, 최근 탈당했다.
국민의힘 “천벌 받을 것” 맹비난
야당은 민주당의 '염치 없음'을 비판했다. 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국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민주당이 당헌당규상 약속을 파기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전당원 투표를 해 봤자 결론은 뻔하다”며 “온갖 비양심적인 일을 다하는데, 천벌이 있을 것”이라고 했다. 정호진 정의당 수석대변인은 “스스로에 대한 약속을 지키지 못하면서 국민의 삶을 지키겠다고 나서는 것은 어불설성”이라며 “집권 여당의 통 큰 책임정치를 기대한 국민을 어리석은 사람으로 만들었다”고 꼬집었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