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월급 300만원에 정년이 보장되는 직장을 다니는 노동자 A씨가 있다. 이 회사를 30년 동안 다닐 경우 A씨가 해당 기간 납부하는 고용보험료(보수의 0.8%)는 864만원. 월급이 한 푼도 오르지 않는다고 가정한 최소 금액이다. 해고될 위험이 없는 그에게 누군가 ‘고용보험에 가입하지 않을 수도 있다’고 제안한다면, A씨는 어떤 선택을 할까. 실업급여를 탈 이유가 없는 A씨는 당연히 거부할 것이다.
그러나 현실에선 이런 선택권이 없다. 고용보험 가입은 고용주와 근로자 양측의 의무로 강제된다. 손실이 뻔해도 보험료를 내야 하는 이 '비합리성'이 곧 사회보험의 원리이자 원칙이다. 사회 구성원 모두가 십시일반 비용을 부담해 최소한의 사회 안전망을 구축하는 것이 사회보험의 존재 이유다. 이 대의에 개인의 선택권은 박탈된다.
이런 사회보험의 원칙을 깬 결과를 우리는 특수고용직(특고) 종사자에게서 목격 중이다. 과로사로 추정되는 CJ대한통운 택배기사 김모씨는 최근 산재보험금을 받지 못할 위기에 처했다. 10여년 전 사회보험의 당연적용이라는 틀을 깨고 특고 종사자에겐 '적용제외'를 선택할 수 있도록 예외를 허용했고, 김씨 본인이 가입하지 않겠다고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의 산재보험 적용제외 신청서는 대필로 확인됐다. 사업주가 가입을 사실상 가로막았기 때문이라는 의혹을 사는 배경이다. 현재 특고 종사자의 산재보험 가입률이 20%를 밑도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특고 종사자의 사회안전망을 강화하기 위해 정부ㆍ여당이 특고의 고용보험 적용 입법을 추진 중이다. 우려되는 것은 경영계의 입김에 밀려 특고의 산재보험 가입에 선택권을 부여했던 유사 논쟁이 또 다시 진행되고 있다는 점이다. 한 야당 의원은 고용노동부의 국정감사 기간, 한국보험대리점협회의 보험설계사 대상 설문조사 결과(응답자 61.8% 선택권 부여 찬성)를 인용하며 특고의 고용보험 가입에 선택권을 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기업주들의 모임인 전국경제인연합회 산하 한국경제연구원이 지난달 공개한 특고 4개 직종 설문조사 결과(응답자 50.4%가 선택권 부여 찬성)도 비슷했다.
경영계의 요지는 '본인이 싫다는데, 고용보험을 억지로 가입시키면 안 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설문조사 결과를 뜯어보면 이는 심한 비약이다. 고용보험 가입을 반대한다는 응답은 각각 14.9%, 37.2%에 그치지만 경영계는 '선택권을 줘야 한다'는 응답까지 특고 종사자들이 고용보험 가입에 반대하고 있다고 간주하고 있다.
무엇보다 사회보험 가입 여부를 묻는 것 자체가 우문이다. 고임금 정규직 근로자에게 같은 질문을 하면 어떤 결과가 나올지는 뻔하지 않은가. 그럼에도 우리 사회는 이들에게 고용보험 가입을 강제하고 있다. 사회보험은 개인의 선택이 아닌 의무라는 사실은 이미 사회적 합의가 끝난 사안이기에. ‘억지로 사회보험에 가입시키면 안 된다’는 주장이 억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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