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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산으로 '세상'을 풍자하다

입력
2020.10.30 04:30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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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30 한 갑부의 유언

최다 출산 여성에게 유산을 물려주라는 밀러의 유언이 지닌 의미에 대해서는 해석이 분분하다. pxhere 이미지

최다 출산 여성에게 유산을 물려주라는 밀러의 유언이 지닌 의미에 대해서는 해석이 분분하다. pxhere 이미지


찰스 밴스 밀러(Charles Vance Millar)라는 캐나다 토론토의 한 변호사가 1926년 10월 31일 심장마비로 숨졌다. 양조 회사와 경주마 목장을 운영했고, 더비 상금을 어린이병원에 선뜻 기부하곤 하던 갑부의 자선가였다. 그는 독신이었고 가까운 친척도 없었다.

그의 유언장이 공개됐다. "내가 남긴 재산은 내게 필요했던 것보다 더 많이 모으고 지녀온 어리석음의 증거"라며 자신의 유산을 '이런 이들'에게 물려주라는 내용이었다. 9개 항에 나열된 '이런 이들'의 면면이 파문을 일으켰다.

가령 양조 회사 지분은 음주를 미풍양속을 해치는 악습이라고 비난하던 개신교 목사들에게 분배하고, 목장 지분은 경마를 도박이라며 삿대질하던 세 사람이 나눠 가지라는 내용 등이었다. '최소 3년간 성실히 양조 회사와 목장을 운영해야 한다'는 단서에도 불구하고, 상속을 포기한 이는 없었다. 가장 큰 모욕은 밀러에게 자메이카 별장을 물려받은 세 명의 변호사 몫이었다. 서로 말도 섞지 않을 정도로 앙숙이었다는 그들은 유언장 내용에 잔뜩 들떴지만, 확인 결과 별장은 밀러가 팔아 치운 뒤였다. 그 유증은 무효가 됐다.

주식 등 가장 큰 몫의 마지막 항이 소동의 절정이었다. 자신이 죽은 시점부터 만 10년간 토론토 시민 중 가장 아이를 많이 낳은 여성에게 상속하라는 것. 이어 닥친 대공황 속에 출산 경쟁이 뜨거워졌다. 이른바 'The Great Stork Derby'였다. 'Stork(황새)'는 서양 민담에 아이를 물어다 주는 존재다. 산아제한 활동가들은 유언 무효화 소송을 걸었다. 반사회적이라는 비판도 거셌다. 1936년 법원은 유언을 적법 판정했다.

8명이 최종 경합했다. 10명을 출산한 한 여성은 혼외 자식 4명이 포함돼 탈락했고, 토론토 교외에서 아이를 낳은 여성과 11명을 출산했지만 4명을 사산한 여성도 있었다. 9명을 출산한 동점자 4명은 각각 14만2,000여달러( 2019년 기준 약 730만 US달러)를 상속받았다.

최윤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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