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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환이 몸 밖에 있는 이유 – 각자가 있어야 할 곳

입력
2020.10.27 16:30
수정
2020.10.27 17:38
2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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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창섭
엄창섭고려대 의과대학 교수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나는 운동을 즐겨 하지 않는다. 그런데 어릴 때부터 운동을 싫어했던 것은 아닌 것 같다. 친구들과 같이 소프트 볼이나 축구, 심지어는 씨름 등을 하며 놀았던 기억이 있다. 언제부터 운동을 싫어하게 되었을까? 어렴풋이 초등학교 때 동네 아저씨들과 축구시합을 하다가 날아오는 공에 넙다리 사이를 세게 맞아 아파서 데굴데굴 굴렀던 기억이 난다. 물론 이 기억이 사실인지는 확신할 수 없지만 그 이후로 동그랗게 생긴 공을 가지고 하는 운동들이 싫어지기 시작한 것 같다.

넙다리 사이를 공으로 맞았는데 왜 견딜 수 없을 정도로 아팠을까? 아마 공이 고환에 부딪혔기 때문일 것이다. 남자들의 넙다리 사이에는 음낭이 있고 그 속에는 고환이 들어있다. 고환은 난자와 합쳐져 새로운 생명을 탄생시키는 정자를 만드는 장기이다. 생명을 만드는 중요한 장기는 안전하게 보호하는 것이 당연할 것이다. 그래서 정자의 파트너인 난자를 만드는 난소는 골반안에 넣어 두었다. 고환도 난소와 마찬가지로 골반이나 배안에 두었다면 어디에 부딪혀도 다칠 염려를 하지 않아도 될 터이고, 나처럼 공에 맞아 아파서 구르는 일도 없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몸밖에 굳이 내놓았을까?

그 이유로 흔히 건강한 정자가 왕성히 만들어지는데는 온도가 중요하다는 것을 든다. 즉 체온보다 2,3도 낮은 온도에서 정자생성이 제일 활발하고, 돌연변이도 적게 일어난다는 것이다. 요즈음처럼 날씨가 차지면 음낭에 있는 근육이 수축해서 고환이 몸에 바짝 달라붙고, 무더운 여름이나 더운 곳에서는 음낭이 축 처져 고환과 몸 사이가 멀어지는데 이것이 정자생성에 적절한 온도를 유지하기 위한 방법이라고 한다.

또 다른 설명도 있다. 정자가 가장 활발하게 기능을 하는 것은 다른 세포와 마찬가지로 체온 즉 37도 정도에서다. 바꾸어 말하면, 낮은 온도에 있는 정자는 제 기능을 온전히 발휘할 수 없다. 정자의 주요 기능은 편모라고 하는 것을 이용하여 헤엄을 치는 것이다. 정자는 부고환에서 이미 움직일 수 있는 능력을 다 갖추게 되지만 남성의 몸 속에서는 절대 움직이지 않는다. 정자가 움직이기 시작하는 것은 여성의 질 속에 들어갔을 때이다. 질안의 온도는 몸의 다른 곳과 마찬가지로 37도 정도이다. 낮은 온도에 있던 정자가 상대적으로 높은 온도를 가진 질안에 들어가면서 순간적으로 활발하게 운동을 하게 되어 자궁목과 자궁안을 지나 난자가 기다리는 나팔관까지 갈 수 있게 된다.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사람의 경우, 고환은 콩팥 근처에서 만들어지기 시작해서 태생기 동안 점차 아래로 이동하여 태생 7개월 전후하여 사타구니에 있는 관을 통과하여 음낭 속으로 들어가서 출생시에는 거의 음낭 속에 위치하게 된다. 그런데 간혹 출생할 때까지 고환이 음낭 안까지 내려가지 못해 배안이나 사타구니에 머물기도 하고, 음낭 속이 아닌 다른 곳에 가있는 경우도 있다. 정상적인 고환의 이동 경로 어디엔가 멈추어 있는 경우를 잠복고환이라 하고, 정상적인 위치에서 벗어나 다른 곳에 가 있는 경우는 이소고환이라 한다. 이런 경우, 고환의 온도가 정상보다 높아서 정자가 제대로 만들어지지 않게 된다. 결과적으로 불임이 될 수도 있고, 정상 위치의 고환보다 암도 더 많이 발생한다.

고환뿐 아니라 우리 몸의 장기나 조직은 모두 있어야 할 곳이 정해져 있다. 있어야 할 곳이 아닌 다른 곳에 있게 되거나 원래 있어야 할 것이 다른 것으로 바뀌면 문제가 생긴다. 예를 들어 위염이나 헬리코박터에 감염된 상태가 지속되면 위안의 환경이 달라져서 위점막이 창자점막으로 바뀌는 경우가 있다. 이런 현상을 장상피화생이라 하는데 위암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있다. 창자점막은 창자에 있어야 정상이지 위에 있으면 암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우리 사회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사회의 곳곳마다 꼭 그곳에 있어야 할 사람들이 있어서 제 몫을 제대로 한다면 무슨 문제가 생기겠는가? 공자가 정치에 대해 묻는 제나라 경공에게 “임금은 임금답고, 신하는 신하답고, 부모는 부모답고, 자식은 자식다워야 한다”고 했는데, 누구나 자신의 역할을 제대로 하려면 자신이 있어야 할 위치를 잘 파악하라는 의미를 담은게 아닌가 한다.

엄창섭 고려대 의과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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