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병 중인 이건희 회장이 삼성그룹의 마지막 회장이 될 것입니다."
단언했다. 민감한 자신의 거취였지만 망설임은 없는 듯 했다. 2017년12월 27일, 당시 '국정농단' 사건 항소심 결심공판에 나와 특검 측의 심문을 받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답변이다. 지난 2012년 44세에 부회장에 올라선 자신에겐 향후에도 회장 승진은 없을 것이란 의미로 들렸다. 그로부터 8년이 흐른 현재, 일각에선 부친 별세와 함께 이 부회장의 회장 승진에 대한 시나리오가 또다시 흘러나오고 있다. 부친이 병석에 누운 2014년 이후, 사실상 삼성을 이끌어 온 이 부회장에게 자격 요건은 충분하단 판단으로 해석된다.
일단, 그룹 내부에선 현재까지 이 부회장의 승진 가능성에 대한 논의는 없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에 정통한 관계자들도 26일 "평소에도 이 부회장은 승진에 크게 관심이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외형적인 '회장'이란 타이틀만 없을 뿐, 이미 6년 전부터 삼성의 실질적인 총수 역할을 해 온 이 부회장에게 직함은 중요한 부분이 아니란 의미다.
하지만 그룹 외부에선 이 부회장의 승진설에 힘이 실리는 모양새다. 무엇보다 부친의 타계로 이 부회장의 그룹 총수 자리 안착에 대한 명분이 갖춰졌다. 대외적으로도 회장 승진과 함께 이 부회장이 글로벌 기업인 삼성의 경영권을 물려받은 구심점이란 인식을 확실하게 심어줄 필요가 있다는 시각도 나온다.
외부에선 이미 이 부회장이 그룹 총수로 인정 받아왔던 것도 사실이다. 지난 2018년 공정거래위원회가 대기업 현황을 발표하면서 삼성그룹 동일인으로 이재용 부회장을 지정했기 때문이다. 동일인이란 그룹을 실질적으로 지배하는 자로, 공정위가 매년 5월 상호출자제한 기업집단을 지정할 때 기준이 되는 개인이나 회사(법인)를 의미한다.
세간에선 최근 '3세 경영'으로 속속 갈아타면서 회장에 오른 국내 주요 그룹 총수들과 비교 잣대도 이 부회장의 승진 배경으로 지목하고 있다. 현재 '4대 그룹'으로 통하는 삼성과 현대차, SK, LG 총수 가운데 부회장 직함을 가진 총수는 삼성 뿐이다.
현재 그룹 회장은 정의선 현대차 회장을 제외하고 모두 선대 회장의 타계 직후 자리를 이어받았다. 최태원 SK 회장은 1998년 9월 1일 회장에 취임했다. 부친인 최종현 회장이 8월 26일 타계한 지 일주일 만이었다.
구광모 LG그룹 회장 역시 LG전자 상무로 재직 도중 양아버지인 구본무 회장(2018년 5월 20일)의 별세 이후 한 달여 만인 6월 29일 회장에 올랐다. 이건희 회장도 이병철 창업주 타계(1987년 11월 19일) 이후 20일가량 지난 12월 1일 자리에 올랐다.
다만, 이 부회장에게 현재진행형인 사법리스크는 부담이다. ‘불법승계 의혹’ 사건 공판준비기일이 지난주 열리면서 기나긴 방어권 행사가 예고됐다. 국정농단 재판도 3년째 이 부회장을 놓아주지 않고 있다. 그의 뇌물죄 파기환송심 재판은 26일 공판준비기일로 8개월만에 재개됐다. 재계 관계자는 “이미 실질적인 총수 역할을 하고 있는 이 부회장도 이른 시간 내에 회장에 올라 무게감을 더 하겠지만, 이 부회장이 재판이 진행 중이라는 점은 변수”라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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