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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 한국일보>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설치법안에 기권표를 던졌다는 이유로 징계를 받은 금태섭 전 의원이 더불어민주당을 탈당하자 거대 여당의 협량을 걱정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과거 계파 싸움으로 시끄러웠던 민주당은 지금 친문 일색으로 재편돼 있다. 친문 지지를 얻지 않으면 최고위원 당선도 어렵다는 게 정설이다. 그나마 ‘조금박해’(조응천ㆍ금태섭ㆍ박용진ㆍ김해영)가 소장파 역할을 해왔지만, 21대 총선에서 조응천ㆍ박용진만 재선에 성공한 데다 그나마도 금태섭이 당을 떠나면서 더 외로운 목소리가 될 가능성이 높다.
□남은 이들이 서 있는 자리는 척박하다. 소장파의 퇴장에 의원들은 ‘앓던 이 빠져 홀가분하다’는 분위기이고, 친문 지지자들은 “가는 길에 박용진ㆍ조응천도 데려가라”고 악담을 퍼붓는다. 의원 개인의 소신을 이유로 한 시대착오적 징계에 대한 반성은 찾아볼 수 없고, 합리적인 자기반성마저 ‘내부 총질’로 모는 비민주성에 대한 문제 의식도 전무하다.
□한국 정치에서 소장파로 유명한 건 16대 국회 때 열린우리당 '천신정'(천정배ㆍ신기남ㆍ정동영)과 한나라당 ‘남원정’(남경필ㆍ원희룡ㆍ정병국)이다. 그 이후로도 현 여당 계열에선 아침이슬(17대) 진보행동(18대) 통합행동(19대)이 활동했고, 현 야당 계열에선 새정치수요모임(17대) 민본21(18대) 경제민주화실천모임(19대)으로 맥이 이어졌다. 다만 20대 국회의 경우 ‘진박 공천’ 의원이 대거 배출되면서 새누리당에선 소장파의 명맥이 사실상 끊겼다.
□“한 마리 제비로는 능히 당장에 봄을 이룩할 수 없지만 그가 전한 봄, 젊은 봄은 오고야 마는 법, 소수의견을 감히 지키려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이다” 고 민문기 대법관이 1977년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 소수의견에서 남긴 말이다. 소수의견의 존재의의를 잘 보여주는 이 명언은 왜 획일화된 정치가 아니라 다양성을 반영한 정치여야 하는지 잘 보여준다. 이견을 허용하지 않고 특정 세력이 좌지우지하는 당의 미래는 암울하다. 친박의 독주와 내부 자정 기능의 상실은 결국 박근혜 탄핵으로 이어졌다. 남아 있는 ‘조박해’의 어깨가 무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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