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원하는 노래를 부른다는 일념 하나로 30년을 버텼는데, 이제는 정말 벼랑 끝에 몰린 것 같아요."
코로나19로 공연계 전반이 위축됐으나, 그 중 제일은 합창단이다. 성악 특성상 악기 연주자보다 비말 전파 위험이 큰 탓에 공연을 열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1989년 창단된 서울모테트합창단도 예외는 아니었다. 민간 합창단 가운데 가장 활발한 활동을 자랑했지만, 지난 2월 이후 단 한번도 무대에 오르지 못했다. 사회적 거리두기 완화로 오케스트라 공연이 속속 재개되는 현실과 대조적이다.
22일 서울 서초동 연습실에서 만난 박치용(57) 단장 겸 상임지휘자는 "단원 30여명에게 월급을 줄 수 없어 3월부터 모두 무급휴직 상태"라며 "언제 정상화될지 몰라 합창단이 존폐 위기에 놓여있다"고 말했다. 모테트합창단은 민간에서는 드물게 단원을 직접 고용해 4대보험 가입은 물론 월급을 지급해온 곳이다. 박 단장은 "1인당 평균으로 따지면 100만원 남짓 많지 않은 월급이지만 그마저 받지 못해 '차라리 실업급여라도 받게 해달라'는 호소를 들을 때면 마음이 찢어진다”고 말했다.
코로나19 쇼크는 모테트합창단 같은 순수 민간 예술단체에 더 크게 다가온다. 박 단장은 "한 때 공공으로 소속될 기회도 있었지만, 그보다는 음악적 자율성을 택해 독립단체로 남았는데 요즘 같은 시기엔 그 결정이 너무 가혹했다 싶다"고 푸념했다. 합창단 연간 예산(9억원)의 3분의 2는 공연 수익으로 충당된다. 현재로선 최근까지 모든 공연이 취소됐다. 무관중 공연으로 계획 중인 12월 중순 정기연주회를 빼면 올해 나머지 일정은 기약할 수 없는 상태다.
물론 코로나19가 있기 전에도 경영난은 있었다. 그때마다 음악에 대한 열정 하나로 극복해 왔다. 박 단장은 "서울 장안동 폐차장 거리에서 창단된 이후 6번 이사를 다니며 돈 걱정 안한 적이 없지만, 단원 모두 ‘우리만 할 수 있는 음악을 한다’는 사실에 자부심이 컸다"고 했다.
모테트합창단의 강점은 종교 음악. 성악의 정수로 불리는 음악이다. 누구나 아는 대중적인 노래보다는 잘 연주되지 않는 작품을 올릴 때 보람이 컸다. 이런 공을 인정받아 2005년 대한민국문화예술상, 2011년에는 대원음악상 등을 받았다. 지난해에는 유럽의 유서 깊은 음악 축제인 바흐 페스티벌에 정식 초청돼 독일도 다녀왔다.
정부가 예술계 지원에 나섰다고는 하지만, 현재 모테트합창단이 느낄 수 있는 건 단원들의 고용유지 지원금 몇개월 분이 전부다. 그마저 월급의 극히 일부다. "30년 전 합창단을 만들 당시만 해도 '한 세대 정도가 지나면, 예술인이 먹고 사는 데는 지장이 없는 세상이 오지 않을까'하고 기대를 품었어요. 경제 발전은 상상 이상으로 폭발적이었는데, 문화 인프라는 달라진 게 없네요. 자생적인 민간단체로 살아남겠다는 꿈, 너무 큰 욕심이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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