텔레그램 ‘n번방’ ‘박사방’ 등에서 피해자들을 유인ㆍ협박해 찍은 성 착취물을 유포한 조주빈과 문형욱에게 검찰이 무기징역을 구형했다. 두 사람을 처벌하는 것으로 끝이 아니다. 수없이 많은 n번방 사건 가담자를 찾아내 처벌하는 문제, 재발 방지 대책을 마련하는 문제 등 난이도 높은 장기 과제가 남았다. 국회의 역할이 크다.
이번 국정감사는 '추미애'로 시작해 '윤석열'로 끝날 듯하다. 그럼에도 n번방 성 착취 사건에 주목한 의원들이 있었다. 덕분에 디지털 성범죄가 사건의 처참한 실태를 조금 더 까발려졌다.
“현직 교사도 n번방 참여” 연루자 백태
‘박사방’은 알려진 피해자 74명 중 16명이 미성년자다. 이탄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n번방’ ‘박사방’ 등에 가입해 아동ㆍ청소년 성 착취물을 내려 받은 혐의로 수사를 받은 피의자 중에 현직 교사가 4명이나 된다는 교육부와 시ㆍ도교육청 자료를 공개했다. 이 중 인천의 기간제 교사가 아무런 불이익도 받지 않은 채 계약 만료 직전에 퇴직한 사실도 알렸다.
디지털 성범죄는 '괴물' 혹은 '루저'만 저지르는 게 아니라는 사실도 거듭 확인됐다. 박완수 국민의힘 의원은 디지털 성범죄에 연루된 공무원이 149명이라고 밝혔다. 경찰청 디지털 성범죄 특별수사본부가 올해 출범한 후 검거한 현직 공무원 숫자다. 군인ㆍ군무원이 128명, 교사가 8명, 경찰ㆍ지자체공무원이 각 4명, 소방 공무원이 2명 등이다. 전원 남성이다. 'n번방' 등에서 제작된 성 착취물을 휴대전화에 저장해 뒀다 적발된 경우가 가장 많았다.
서울경찰청에서 신원을 특정해 수사중인 'n번방' 무료 회원이 305명이라는 것도 국감에서 공개됐다. 경찰이 조주빈의 휴대폰을 분석해 무료 회원을 계속 추적 중인 만큼 규모는 더 늘어날 수 있다.
n번방 피해자들의 신원 정보를 확인해 조주빈에 상납한 사회복무요원은 징역 15년을 구형 받았다. 사회복무요원들이 여전히 공무원의 ID를 공유해 개인 정보를 자유롭게 조회할 수 있다는 사실도 국감에서 밝혀졌다.
“불법 촬영물 삭제 방안” “철저한 처벌” 부족 지적
디지털 성범죄 피해자들을 가장 힘들게 하는 것은 성 착취물이 끊임없이 재유포된다는 점이다. 영상 서버가 해외에 있으면 속수무책이기 때문이다. 허은아 국민의힘 의원은 최근 3년간 방송통신심의위원회 디지털성범죄심의지원단에서 심의한 성 착취물 사건 6만8,172건 중 영상 ‘삭제’ 조치가 된 건 148(1.8%)건 뿐이라는 실태를 공개했다. '시정' 조치가 이뤄진 대부분의 성 착취물은 국내 접속만 차단되고 제대로 삭제되진 않았다.
디지털 성범죄 양형 기준을 강화해야 한다는 지적도 거듭 제기됐다. 전주혜 국민의힘 의원은 n번방 전 운영자인 와치맨(징역 3년 6개월 구형)이 2018년 음란물 유포 범죄로 고작 집행유예를 선고 받으면서 n번방 범죄까지 손을 뻗은 사실을 지적했다. 전 의원은 "당시 대구지법은 증거가 없다는 이유로 솜방망이 처벌했다”고 꼬집었다. 백혜련 민주당 의원은 n번방 재판 선고를 앞둔 대구지법 안동지원에 "강화된 양형 기준을 적용해 달라"고 주문했다.
국감 이후 입법 조치는 국회의 몫
이탄희 의원은 국감 질의 후 스쿨미투(교내 성폭력 고발)와 n번방 사건 등에 연루된 성범죄 교사를 피해자와 분리하는 학교폭력예방 및 대책에 관한 법률 등 개정안을 발의했다. 국감 질의가 입법화로 이어져야 한다는 취지에서다.
n번방 사건은 어린 피해자들의 심리적 취약성을 악용해 저지른 잔혹한 범죄다. 이 같은 ‘그루밍 범죄’ 대책을 담은 법안이 여럿 발의돼 있다.
진선미 민주당 의원이 낸 아동ㆍ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 개정안에는 아동ㆍ청소년을 강제 추행한 사람이나, 아동ㆍ청소년에게 성을 매매하도록 권유한 사람 등에 대한 형량 강화가 담겼다. 특히 성착취물은 은밀히 제작ㆍ유포되는 만큼, 수사기관이 신분을 위장해 범죄 현장에 접근할 수 있도록 하는 조항도 포함됐다. 국민의힘도 비슷한 법안을 준비중이라 국회에서 처리될 가능성이 크다. 양정숙 민주당 의원은 여성가족부, 방송통신위원회, 경찰청의 공조수사를 위해 전담기구를 설치하도록 하는 법안을 지난달 대표 발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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