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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는 "접종 계속" 의협은 "접종 중단"…독감백신 대혼란

입력
2020.10.22 20:10
수정
2020.10.23 11:29
1면
0 0

22일 하루에만 18건 이상 '접종 후 사망' 신고
정부 접종사업 계속 입장 속 의협 "1주 중단" 권고
백신 공포 확대 속 전문가들 "백신 안전"이 중론

독감백신 접종 후 사망신고가 잇따르고 있는 가운데 22일 경기 수원시 한 병원에서 의료진이 시민들에게 접종할 백신을 준비하고 있다. 뉴시스

독감백신 접종 후 사망신고가 잇따르고 있는 가운데 22일 경기 수원시 한 병원에서 의료진이 시민들에게 접종할 백신을 준비하고 있다. 뉴시스


인플루엔자(독감) 백신 접종 후 사망했다는 신고가 22일 하루에만 전국에서 18건 이상 접수됐다. 이 중 백신 접종으로 인한 사례로 판명된 경우는 1건도 없지만, 고령자들을 중심으로 원인불명의 사망이 잇따르면서 국민의 불안과 공포가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이에 의료계 일각에서는 백신 접종을 일단 멈추고 사인 규명 이후인 1,2주 뒤로 미루자는 주장이 나왔다. 하지만 정부는 "독감 백신 접종의 적정한 시기가 있기 때문에 접종 사업 중단은 어렵다"는 입장에서 물러서지 않았다. 정부는 맞으라 하고, 의사는 맞지 말라는 등 지침이 엇갈리면서 독감백신을 둘러싼 혼란은 극에 달하고 있다.

특히 사망자들 중 같은 제조번호(로트번호)로 생산된 백신을 맞은 사례가 처음 확인되면서 "같은 번호의 백신 접종 사망자가 있으면 접종을 중단하겠다"고 했던 질병관리청이 태도를 바꿀 여지도 없지 않다.

22일 질병관리청과 지방자치단체들에 따르면 지난 16일 이후 방역당국이 보고받은 독감백신 접종 후 사망자는 28명(22일 오후 11시 기준)으로 집계됐다. 이들 사망자는 대체로 70대 이상 기저질환을 지닌 고령자다. 이날 강원 춘천시에서는 전날 백신을 맞은 79세 남성이 출근 중 심정지 증세를 보여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사망했다. 서울에서도 84세, 72세 남성이 역시 백신 접종 후 숨졌다. 이날까지 16일 고교생이 사망한 인천을 비롯해 서울, 경기, 대구, 경북, 경남, 전북, 전남, 제주 등 전국 대부분 지역에서 관련 사망자가 속출했다. 이들이 접종한 백신은 코박스인플루4가PT주, 플루플러스테트라프리필드시린지주, 스카이셀플루4가 등으로 다양했다.


의협 "1주일 중단하자"... 병의원 접종 거부 할 수도

개원의 중심 의료단체인 대한의사협회(의협)는 이날 오후 기자회견을 열고 “23일~29일 일주일간 백신 접종 중단을 정부에 권고한다”고 밝혔다. 최대집 의협 회장은 “백신 접종과 사망의 인과관계가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았으므로 접종을 중단한 후 조사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가 독감백신 사태 발발 후 '백신 사업 유지'를 표명해오던 중 처음으로 의사단체가 이에 반대되는 입장을 공식화한 것이다.

서울 영등포구보건소는 관내에서 백신 접종 후 사망 사례가 나오자 관내 의료기관에 '독감 예방 접종 보류'를 권고하기도 했다. 이는 서울 25개 자치구 가운데 처음이다.

그러나 질병청의 입장은 바뀌지 않았다. 정은경 질병관리청장은 이날 질병청 종합 국정감사에서 “현재까지 사망자 보고가 늘기는 했지만, '예방접종으로 인한 사망'이라는 직접적 연관성은 낮다는 것이 피해조사반의 의견“이라며 "아직은 중단할 필요가 없다는 게 전문가의 판단"이라고 말했다.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도 "하루 70대 이상 사망자가 560명인데 그 중 절반은 이미 백신을 맞은 것으로 추정된다"라며 사망자 신고 급증을 백신사업 중단으로 연결지을 생각이 없음을 드러냈다.

계속 접종을 한다는 정부의 방침과 달리 23일부터 실제 병의원에서 백신접종을 받지 못할 수도 있다. 의협 최 회장은 “의협 산하단체와 의료기관, 전체 회원에게 공문과 문자 메시지를 보내 23일부터 백신 접종을 중단하라고 권고하고 있다”며 “(병의원 접종 중단으로) 접종 수가 크게 줄어들 것”이라고 말했다. 접종을 거부하는 병원들이 크게 늘 경우 정부 방침과 의료 현장의 실제 시행이 서로 달라 혼란과 불안이 가중될 수밖에 없을 전망이다.


“안전하다”는 게 중론… “접종은 꼭 해야”

독감 예방접종 중단 여부에 대해서는 전문가들의 의견이 갈리고 있다. 국민들의 불안감을 잠재우기 위해 백신과 사망의 인과 관계 결과가 나올 때까지 접종을 중단하는 게 낫다는 의견도 목소리를 키우고 있다. 최원석 고려대 안산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백신과 사망 간의 인과 관계를 조사하고 보건당국이 국민과 소통하기 위해 시간을 갖는 게 필요할 수도 있을 것 같다”며 “의사 입장에서는 관계가 낮을 것으로 보지만 불안감이 고조된 국민의 눈높이에서 생각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어 “앞으로 고령자 사망 신고 사례가 계속 늘고 불안감이 가중될 것”이라며 “일일 접종자 수 추이를 보면서 중단을 고민해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사망 사례 대부분이 백신과 인과 관계가 없을 가능성이 커 굳이 중단할 필요가 없다는 의견이 아직 대다수다. 기모란 국립암센터 예방의학과 교수는 “현재 사망 사례들은 다른 로트번호의 백신을 서로 다른 병의원에서 맞은 경우이기 때문에 백신으로 인한 사망 가능성이 낮다”며 “설령 한 두 사례가 백신으로 인한 것으로 밝혀진다해도 ‘백신이 위험하니 맞지 말자’라고 할 수 없다”고 말했다. 모든 백신은 부작용이 있고, 독감 백신도 100만 명당 1,2명이 길랭-바레증후군 등에 걸릴 수 있다는 게 이미 연구 결과로 밝혀져 있는 만큼 접종 중단의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고령자 사망이 백신 자체의 문제가 아닌 기저질환이나 자연사와 더 연관되어 있다고 본다. 기 교수는 “우리나라 하루 평균 사망자 800명 중 70대 이상 고령자가 600명이 넘는다”며 “단지 사망 전 백신 접종을 했다는 이유로 계속 사망 사례 수를 세는 것 자체가 불안감을 조성한다”고 우려했다. 사망 전 백신 접종이 사망에 영향을 미쳤을 수 있다고 의심해볼 수 있지만, 시간 적 선후 관계만으로 '백신으로 인한 사망'이라고 단정하는 분위기는 위험하다는 지적이다.

독감 접종 일시 중단에 대한 의견 차를 떠나 전문가들은 독감 접종을 반드시 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민양기 의협 의무이사는 이날 브리핑에서 “독감 백신 접종은 꼭 필요하다. 우리도 일주일만 유보하자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남보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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