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조 우상화’는 1800년 정조가 갑자기 죽은 직후까지로 거슬러 올라간다. 우상화 이유는 간단했다. 각 정치 세력이 정조의 권위를 활용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후 왕들이 정조의 왕권 강화책을 부각시켰다면, 신하들은 신하들 얘기를 경청하는 정조를 강조했다.
노대환 동국대 사학과 교수는 2016년 계간 ‘역사비평’에 기고한 논문에서 “정조가 지향했던 국가 운영 방향이 옳았는지, 통치 방식은 적절했는지, 그의 정치 운영은 왜 한계를 드러냈는지 등에 대한 진지한 검토가 19세기 조선에서 이뤄졌어야 하지만 대부분 정조를 치켜세우며 자신들에게 유리한 기억을 끌어내 이용하기에 급급했다”고 분석했다.
1960년대부터는 영웅이 필요했다. 민족적 열등감의 원인인 식민사관을 극복해야 했다. 1970년대 ‘자본주의 맹아론’과 ‘내재적 발전론’이 부상했고, 조선의 중흥 시대로 18세기가 지목됐다. 당시 임금이던 영조와 정조가 주목 받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정조가 대중에게까지 명실상부한 개혁 군주로 자리매김하게 된 건 1993년 출간된 이인화의 소설 ‘영원한 제국’ 덕이었다. 이 소설은 이후 영화나 드라마 등으로 다양하게 변주됐다. 재독 사학자 변원림 박사는 이런 흐름에 비판적이다. 그는 “1997년 외환위기 이후 경제적 어려움에 직면하자 해결책을 찾기보다 환상의 세계로 도피한 것”이라 말했다. 이후 정조 우상화는 절대적이 됐다. 심지어 조선인 모두가 단군의 후예이고, 중국과 다른 민족이라는 인식을 심어 준 사람이 정조였다는 주장까지 나올 정도였다.
국내 학계도 이런 우상화가 불편하기는 매한가지다. 18세기 봉건 시기 전제군주인 정조에게서 현대 사회 리더십 같은 교훈적 이야기를 뽑아내려는, 정조를 상업적으로 포장해 많이 팔아먹으려는 시도 자체가 잘못됐다는 지적도 나온다. 오수창 서울대 국사학과 교수는 2016년 역사비평 논문에서 “과거와 현재의 표피적 동질성에 주목해 역사를 ‘거울’로 여기고 거기서 ‘교훈’을 추출하는 건 근대 이전, 중세의 역사학”이라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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