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산날 임신 알았다"… '당근마켓 신생아' 산모 혼돈의 나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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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출산날 임신 알았다"… '당근마켓 신생아' 산모 혼돈의 나흘

입력
2020.10.23 09:30
수정
2020.10.23 1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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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 여성가족부에 제출한 사건개요
임신 알자마자 출산... 진통 중 입양 문의도
전문의 "출산 임박 임신 인지 사례 자주 목격"

중고 물품 거래 유명 애플리케이션 '당근마켓'에 올라온 아기 입양 게시물 연합뉴스


중고물품 거래 애플리케이션 ‘당근마켓’에 지난 16일 자신이 낳은 신생아를 20만원에 판매한다는 글을 올려 공분을 산 20대 여성이 출산 당일에야 임신 사실을 인지했다고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여성은 출산일인 지난 13일에야 복통으로 병원을 찾았고, 출산 후 곧바로 입양절차를 밟으려다 숙려기간 문제로 불만을 표시한 것으로 드러났다.

22일 제주도가 여성가족부에 제출한 사건개요를 살펴보면 자신의 임신 사실을 제대로 받아들이기도 전에 진통을 거쳐 출산을 했고, 나흘만에 당근마켓에 신생아 판매 글을 올린 A씨의 혼란스러운 나흘간의 정황이 드러난다.


11일 복통, 이틀 뒤 혼자 버스로 산부인과에

제주도가 작성한 사건개요에 따르면 지난 13일 대중교통을 이용해 혼자 산부인과를 방문한 A씨는 이날 진료 과정에서야 본인의 임신을 인지하고 당일 출산했다고 주장한다. 제주도 관계자는 “산부인과 확인 결과 이 산모가 11일부터 복통이 있었고, 지인과 상의한 후 산부인과를 찾았던 것”이라고 말했다. 사흘간 진통하다 보호자 없이 산부인과로 향했다는 얘기이다. A씨는 직장 때문에 부모와 떨어져 혼자 살고 있었다.

과연 출산 당일까지 임신 사실을 몰랐다는 것이 사실일 수 있을까. 전문가들은 가능성이 극히 낮기는 하지만 전혀 불가능한 일은 아니라고 말한다. A씨처럼 출산이 임박할 정도의 늦은 주수(週數)까지도 임신을 인지하지 못할 수 있다는 것이다. 산부인과 전문의 윤정원 의사는 "청소년 임신이나 지적장애가 있거나, 살이 많이 찐 경우, 원래 생리가 불규칙한 경우, 피임약 혹은 생리를 멈추게 하는 자궁근종 치료제를 복용하거나, 유방암 치료로 생리가 끊겼는데 임신을 하는 등 다양한 케이스가 있다"고 설명했다. A씨에게 이런 임신거부증 등의 증세가 있었을 수 있다는 얘기다.

A씨는 자신의 임신 사실을 병원으로부터 전달받은 후 바로 아이 입양 의사를 밝혔다. 병원에서는 제주의 입양센터를 소개해줬고, 출산을 앞둔 A씨는 진통하는 와중인 13일 오후 5시 30분쯤 직접 입양센터로 전화해 입양과정을 문의했다. 오후 6시쯤 입양기관 직원이 병원을 방문했고, 보호자가 없는 A씨를 위한 필요 물품 등을 지원했다. 이날 오후 7시 21분 출산한 A씨 곁에는 아이의 아버지가 없었다.

출산 다음날인 14일에도 A씨는 병원에서 입양기관과 미혼모자가족복지시설 담당자와 상담을 진행한 것으로 드러났다. 입양기관은 아이입양 절차를 밟기 위해서는 미혼모자가족복지시설 입소와 7일간의 입양숙려기간이 필요하다고 안내했다. 제주도 측은 “A씨가 출산일이 임박해 임신사실을 알게 돼 정신적 충격이 큰 상태로 입양 의사를 적극적으로 밝혔다”며 “시설입소도 거부했고 7일간의 숙려기간에도 다소 불만이 있었다”고 전했다.

출산 나흘만인 16일 병원을 퇴원하고 오후에 공공산후조리원에 입소한 A씨는 오후 6시30분쯤 당근마켓에 문제의 게시물을 올렸다 17일 새벽 삭제했다. 이 사건이 언론에 보도된 후 아이는 제주의 아동보호시설로 보내져 보호조치에 들어갔고, A씨도 19일 미혼모자가족복지시설에 입소했다가 21일 퇴소했다.


원희룡 제주지사는 이번 사건 발생 후 자신의 페이스북 계정에 미혼모 지원실태와 입양 제도 점검에 초점을 맞춰 점검하겠다고 밝혔다. 제주=뉴시스


"취약계층 여성 원치 않는 임신, 도움 빨리 줘야"

A씨의 행위에 대해 엄격한 처벌이 이뤄져야 하겠지만, 이번 사건을 통해 취약계층 여성의 임신과 출산을 돌아봐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모든 여성이 임신 12~14주차에 임신 사실을 알고 정기검진을 받으며 출산을 준비할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홍연지 한국여성민우회 여성건강 팀장은 “민우회도 임신 7,8개월이 되도록 자신의 임신 사실을 몰랐다며 상담을 요청하는 경우를 종종 접한다”고 말했다. 홍 팀장은 “임신사실을 모르는 경우도 있지만, 도움을 요청할 곳이 없어 (임신 사실을 끝까지) 말하지 못하는 사례가 많다”며 “왜 출산이 임박하도록 임신 사실을 몰랐냐고 탓하기 전에, 취약 계층 여성이 원치 않는 임신을 했을 때 일찍 도움을 요청하고 지원할 수 있도록 해야한다”고 말했다.

원희룡 제주지사가 이번 사건 발생 후 “미혼모 보호와 지원실태를 다시 점검하겠다”라면서 입양을 위해서는 출생신고를 해야하는 현행 입양제도에 초점을 맞춘 것도 해결 방향이 잘못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유미숙 한국미혼모지원네트워크(네트워크) 대외협력국장은 “입양을 수월하게 하지 못해서 발생한 사건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사흘간 진통을 겪다 병원을 찾은 A씨는 집에서 출산할 위험을 가까스로 피했지만, 많은 미혼모가 집에서 혼자 출산하고 지원 사각지대에 갇힌다고도 덧붙였다. 유 국장은 “네트워크에 접수된 미혼모 자택출산 사례가 올해만 다섯 번이었다"라며 "병원이 아닌 집에서 출산하면 출생신고가 어려워 아이의 존재를 증명할 수가 없다”고 말했다.

박소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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