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월성 감사결과 뜯어보니… "무리한 폐쇄" 단서 잔뜩 흘려놨다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월성 감사결과 뜯어보니… "무리한 폐쇄" 단서 잔뜩 흘려놨다

입력
2020.10.22 04:30
1면
0 0
20일 오후 경주시 양남면 월성원자력발전소에 가동이 정지된 월성 1호기가 보인다. 경주=연합뉴스

20일 오후 경주시 양남면 월성원자력발전소에 가동이 정지된 월성 1호기가 보인다. 경주=연합뉴스


'조기 폐쇄 결정 과정에서 불합리한 요소를 발견했지만, 결정 자체의 타당성까지 판단하지는 않겠다.' 감사원이 20일 발표한 '월성 원자력발전소 1호기 조기 폐쇄 결정의 타당성 점검 감사 결과'를 압축하면 이렇다. 타당성 여부를 명확하게 가리지 않은 것은 '청와대 눈치를 봤는지, 감사원 칼끝이 무뎠다'는 지적으로 이어졌다.

그러나 감사원은 200쪽에 달하는 감사보고서 곳곳에 '바늘'을 숨겨 놨다.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과 산업통상자원부가 특정 방향의 용역 결과를 도출하려고 무리수를 둔 행태를 자세히 묘사했다. 정책 결정 과정이 문서에 제대로 기록되지 않은 점도 꼬집었다. 청와대를 대놓고 겨냥하지 않으면서도 "청와대의 탈원전 기조와 보조를 맞추는 무리한 결정이었다"고 해석될 가능성을 '활짝' 열어 뒀다.

"경제성 평가 용역 '답정너'" 우회 지적

"처음에는 정확하고 합리적인 평가를 목적으로 일했는데, 어느 순간부터 한수원과 정부가 원하는 결과를 맞추기 위한 작업이 돼 버린 것 같아 기분이 씁쓸합니다." 감사원은 삼덕회계법인(이하 삼덕) 직원 A씨가 한수원에 보낸 메일을 보고서에 실었다. 메일은 2018년 5월 '경제성 평가 용역보고서 초안 검토 회의' 이후에 발송됐다.

A씨가 씁쓸함을 느낀 이유도 자세히 담았다. 해당 회의에서 한수원과 산업부는 삼덕에 월성1호기가 생산하는 전기의 판매 단가를 낮춰 잡으라고 요구했다. 판매 단가를 낮춰 잡으면 월성1호기 경제성이 낮아진다. 삼덕이 "어렵다"고 버티다 받아들인 대목도 보고서에 나온다. '계약 상대자(삼덕)는 용역을 수행함에 있어 발주자(한수원과 산업부)의 업무 요청에 따라야 한다'는 게 용역 계약서에 명기돼 있었다.

감사원은 산업부가 삼덕에 판매단가를 낮추라고 요구한 이유가 "월성1호기 계속 가동의 경제성을 낮추기 위함"이었다는 점도 명기했다. "최대한 경제성이 없는 방향으로 결과가 나와야 했다"(산업부 직원), "산업부는 삼덕에 '계속 가동이 경제성이 없다'는 방향으로 용역을 추진하라고 말하고 싶었을 것으로 예상된다"(한수원 직원) 등 구체적 진술도 실려 있다.

'답이 정해진 용역'으로 볼 정황은 또 있다. 2018년 3월 산업부ㆍ한수원 회의에서 산업부 직원 B씨는 말한다. "일정상 용역은 4, 5개월 걸리더라도, 내부 방침은 신임 한수원 사장이 취임하는 3월 말 시점까지 수립해달라." 조기 폐쇄 여부의 정확하고 객관적 판단이 산업부의 최우선 순위가 아니었을 가능성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삼덕이 수행한 용역이 용역 설계서와 다르게 진행됐다는 점도 감사원은 지적했다.

21일 정부세종청사 산업통상자원부에서 원전산업정책관실 신문보관함에 탈원전 정책 관련 감사원 발표 기사가 담긴 신문이 놓여져 있다. 세종=뉴스1

21일 정부세종청사 산업통상자원부에서 원전산업정책관실 신문보관함에 탈원전 정책 관련 감사원 발표 기사가 담긴 신문이 놓여져 있다. 세종=뉴스1


"행정은 투명해야"라며 '불투명' 비판

"산업부는 국정 과제와 관련된 사안과 같이 중요한 정부의 방침은 결정의 근거와 과정을 공식적으로 기록ㆍ보존되도록 할 필요가 있다. (월성1호기) 즉시 가동 중단 방침과 같은 중요 내용을 행정 지도의 형식으로 공공기관에 전달할 때는 공문의 형식으로 투명하게 실행되도록 하여야 한다."

감사원은 월성1호기 조기 폐쇄 결정 과정이 제대로 기록되지 않은 점을 보고서에서 지적했다. 기록으로 남기지 않으면 '짬짜미' 결정이 될 수 있다는 우려를 전제하고서다. 산업부와 한수원이 공문이 아닌 구두로 협의한 사례도 제시했다.

산업부 직원 C씨는 2018년 5월 정재훈 한수원 사장을 수시로 만나 "경제성 평가 부분을 잘 살펴봐달라”고 당부했다고 감사원에 진술했다. C씨는 "정부 정책 이행을 위해 이용률이 높게 나오면 곤란하다는 이야기를 전달한 것은 사실"이라고 털어놨다. '공문'으로는 하기 어려운 대화다.

이에 감사원은 "우리나라 유일한 원전 영구정지 사례로 2015년 폐쇄 결정된 고리1호기도, '영구정지' 권고가 공문 형식으로 투명하게 전달됐다"는 것을 '각주'로 달아놨다.

신은별 기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