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골, 살갗, 힘살, 가로막…. 교과서가 개편될 때마다 사라진 우리말이다. 이 말들은 대뇌, 피부, 근육, 횡경막으로 한자어로 대체되었다. 사전에 의학 용어라 되어 있는 데도 과학 교과서에서는 살아남지 못했다. 우리말은 깊이 있는 지식을 담지 못한다고 여겼던 탓이다.
교과서에 한자어가 채택되면 어떤 일이 생길까? 화성암, 수성암, 화강암, 편마암 등은 일반인이 교과서에서 처음 만나는 말이다. 개편 전 과학 책에서 화성암은 ‘불에 된 바위’, 수성암은 ‘물에 된 바위’, 이암은 ‘뻘돌’, 사암은 ‘모랫돌’이었다고 한다. 마치 그림 한 장처럼, 우리말 이름에는 돌이 된 배경과 과정이 새겨져 있다. 물론 전공자가 보기에 이암과 뻘돌이 완벽히 일치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지만 교과서란 어린 학생이 모르는 것을 배워가는 책이니만큼 뜻도 모른 채 그냥 외워야 한다면 그것이 더 불행한 일이다. 어려운 말은 누구에게든 공평해야 할 교육 기회를 해치고 만다.
마침표, 쉼표, 느낌표, 물음표는 교과서에서 배워서, ‘하루의 마침표, 오후의 쉼표’와 같이 확장해서도 맵시 있게 쓰인다. 이와 달리 ‘이름씨, 그림씨, 움직씨, 어찌씨’는 명사, 형용사, 동사, 부사와 같은 한자어에 자리를 내주고 말았다. 다행히 한동안 방치한 우리말을 다시 챙겨 쓰는 데가 늘었다. 농림축산식품부에서는 복륜, 주두처럼 어려운 말을 ‘가장자리무늬, 암술머리’로 고쳤고, 식품의약품안전처에서는 견갑골을 ‘어깨뼈’로, 선통을 ‘쏘는 통증’으로 부른다. 말의 덩이에 우리말 조각들이 들어가니 비로소 뜻이 보인다. 말에는 주소가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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