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사태 발빠른 대응 불구 통화정책 한계 분명?
과거 부채부담 우려하던 신중론 벗고
"정부, 재정 지출 확대해야" 한목소리
제롬 파월 연방준비제도(Fedㆍ연준) 의장, 크리스틴 라가르드 유럽중앙은행(ECB) 총재 등 세계 주요 중앙은행 수장들이 최근 정부에 "재정지출을 늘리라"고 한 목소리로 요구하고 있다. 스스로의 정치적 독립성을 중시하는 탓에 평소 정부의 재정정책에 간여하는 언행을 최대한 피하던 것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를 막대한 유동성 공급 대책으로 진정시켰지만, 실물경기 회복까지 이끌어내는 데는 중앙은행의 힘이 한계에 부딪혔다는 인식 때문으로 풀이된다.
‘긴축 장례식’
20일 외신과 금융권에 따르면, 영국 파이낸셜타임스는 지난 주말 진행된 국제통화기금(IMF)과 세계은행의 연례 회의를 '긴축의 장례식'으로 묘사했다. 참석한 주요 연사들이 일제히 재정의 역할을 강조했기 때문이다.
라가르드 ECB 총재는 "기업과 노동자에 대한 재정 지원이 갑작스럽게 사라지는 것이 최대 걱정거리"라며 "코로나19 대유행이 점차 사라져 본격 회복으로 전환되는 단계에도 지원 조치는 유지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앞서 미국에서는 제롬 파월 의장을 비롯한 연준 위원들이 재정 집행을 서두를 것을 요구한 바 있다. 파월 의장은 이달 초 "(정부의) 부양책이 너무 적으면 가계와 기업이 불필요한 어려움을 겪게 돼 회복세가 약해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파월 의장의 최근 재정정책 관련 발언이 너무 잦은 나머지, 긴축재정 성향이 강한 공화당 의원들이 공개 반대 의사를 밝히기까지 했다.
"통화정책, 약발 다했다"
이런 중앙은행 수장들의 공세는 몇 년 전만 해도 상상하기 힘든 풍경이었다. 전통적으로 중앙은행이 정부 지출에 관해 언급할 때는, 과도한 부채에 대한 우려가 반드시 따라붙었다. 정부가 지출을 하면서 국채 이자 같은 조달비용을 줄이기 위해 중앙은행에 돈 풀기를 압박하는 '재정의 화폐화'를 염려했기 때문이다.
아무리 통화정책에 독립성을 보장해도, 정부 부채가 늘어나는 것 자체만으로 중앙은행의 손발을 묶을 여지가 있다. 토머스 조던 스위스국립은행 총재는 “중앙은행은 과도한 정부 부채가 재정에 미치는 영향에 따라 결정을 내릴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최근 연준과 ECB 등이 재정의 역할을 부쩍 강조하는 것은 통화정책의 약발이 다했다는 판단 때문이라는 게 중앙은행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돈을 찍어 뿌리는 통화정책으로 당장 패닉은 잠재웠지만, 결국 근본적인 실물경기와 물가를 회복시키기 위해서는 어려움에 처한 부문을 집중 지원하는 재정의 역할이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뉴욕 연방준비은행 총재를 지낸 윌리엄 더들리 프린스턴대 선임연구원은 “중앙은행들은 정책 수단의 효과가 줄어드는 것을 경험하고 있다”며 “사용할 수단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효과가 점점 떨어지기 때문에 재정의 역할을 요구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정부가 구조개혁 주체?
물론 중앙은행에게도 장기적으로 국가 부채가 부담이 될 것이라는 우려가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IMF는 “기록적 부채 비율이 향후 정책 입안자에게 도전이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특히 차입 능력이 부족한 신흥국은 부채 확대에 더 신중해야 하고, 선진국도 장기적으로는 인구 고령화에 따른 지출 증가 때문에 안심하기 어렵다고 IMF는 지적했다.
이런 딜레마는 결국 구조개혁을 통해 새 성장동력을 찾는 것으로 해결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여기서도 과거에는 민간 부문의 효율성에만 주목하던 흐름에서 벗어나 최근에는 정부의 역할이 갈수록 강조되고 있다. 정부가 보건, 환경, 통신망 등 디지털 인프라(기반시설) 등에 대한 집중 투자로 일자리를 늘리면서 동시에 신경제의 기반을 형성해야 한다는 것이다.
아구스틴 카르스텐스 국제결제은행(BIS) 사무총장은 프로젝트 신디케이트 칼럼을 통해 “경제는 언젠가 회복되겠지만 그 동력은 전과 같지 않을 것이기에 경제 전반의 자원을 효율적으로 재배치하는 집중 지원의 필요성을 깨달아야 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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