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시간 폭언' 악성민원에 세상 등진 관리소장... 법원 "업무상 재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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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시간 폭언' 악성민원에 세상 등진 관리소장... 법원 "업무상 재해"

입력
2020.10.18 15:11
수정
2020.10.18 15: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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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이미지뱅크

“사장님 죄송합니다. 몸이 힘들어서 내일부터 출근하기가 힘듭니다. (아파트 관리)소장 대체 부탁합니다.”

지난 2017년 7월 20일, 입주민과의 갈등과 민원 처리로 스트레스가 심했던 아파트 관리소장 A(사망ㆍ당시 52세)씨는 회사 대표에게 사직 의사가 담긴 휴대폰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2년 가까이 악성 민원으로 자신을 괴롭혀 온 한 주민이 1시간 동안 공개된 장소에서 질책과 폭언을 퍼부은 직후였다. 이날 퇴근 이후 잠도 못 자고, 끼니도 거르던 A씨는 결국 이틀 뒤 극단적 선택을 하고 말았다.

유족 측은 “업무 관련 스트레스에 따른 업무상 재해”라며 근로복지공단에 유족급여와 장의비 지급을 청구했으나 거절당했다. A씨가 스스로 세상을 등지게 된 원인을 업무상 스트레스라고 단정할 수 없고, 개인의 경제적 문제와 정신적 취약성 등도 작용했다는 게 공단 측이 내민 이유였다. 유족 측은 이에 불복해 소송을 제기했다.

법원은 “업무상 재해가 맞다”며 유족의 손을 들어줬다. 서울행정법원 행정3부(부장 유환우)는 A씨 유족이 공단을 상대로 낸 유족급여 및 장의비 부지급 처분 취소 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했다고 18일 밝혔다. 재판부는 “A씨는 입주민의 지속적ㆍ반복적 민원 제기로 인한 스트레스가 개인적 경제 문제 등의 요인에 겹쳐 우울증세가 유발되고 악화했다”며 “사망과 업무 간에 상당한 인과관계가 있다”고 설명했다.

재판 과정에서 사실관계를 따져 본 결과, 2011년부터 경남 양산시 소재 국민임대아파트에서 관리소장으로 일하던 A씨는 주민 B씨에게서 1년 8개월간 민원을 받았던 것으로 나타났다. B씨는 근무시간 외 이른 아침이나 늦은 저녁에도 A씨 개인 휴대폰으로 연락해 언성을 높이며 민원을 제기했다. 심지어 새벽 4시 30분에 관리사무소에 전화를 걸기도 했다. A씨가 사직 의사를 밝힌 당일, 폭언을 퍼부은 당사자도 B씨였다.

재판부는 “A씨가 부동산 계약 문제라는 개인적 이유로 불안ㆍ우울 증세를 겪고 있었던 것은 사실”이라고 인정했다. 그럼에도 △이전에는 정신과 진료 기록이 없었다가 2017년 7월 2차례 치료를 받은 점 △‘1시간 폭언’ 사건 후 다음날까지 잠도 못 자며 계속 불안감을 호소한 점 등에 비춰 A씨의 업무상 재해가 인정된다고 판단했다. 이번 판결은 공단 측이 항소하지 않아 지난 13일 확정됐다.

최나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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