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0세대 가격·소유자 전수조사 해보니
담보대출 없이 매입한 가구 44% 달해
다주택자 즐비 .. 1년만에 6억대 차익도
시세 60~70%로 재산세 "조세형평 저해"
“정부가 어떤 정책을 내놔도 이곳(한남더힐)에는 별다른 영향을 안 미쳐요. 초고가 주택시장은 일반부동산 시장과는 전혀 다르다고 봐야 합니다.”
최근 서울 용산구 한남동에서 만난 공인중개사 A씨는 한남더힐의 특수성에 대해 이같이 말했다. 한남더힐은 실거래가 기준으로 5년 연속 국내에서 가장 비싼 아파트라는 상징성 때문에 '대한민국 상위 1%'가 거주하는 곳으로 알려져 있다. A씨의 말처럼 한남더힐은 정부의 주택시장 안정화 대책에도 불구하고 해마다 꾸준한 매매가 상승을 보이고 있다. 한국일보가 올해 5~9월 한남더힐 600가구의 등기부등본을 전수조사한 뒤, 국토교통부 실거래가 공개시스템과 비교 분석한 결과, 최근 5년새 실거래가격이 큰 폭으로 올랐다. 평형별 상승률을 살펴보니 △59㎡ 71~123% △177㎡ 13.5~39% △208㎡ 15~38% △233~235㎡ 24~40% △240~243㎡ 5.7~30.8%로 나타났다.
한남더힐의 가격 상승률은 같은 기간 서울 아파트 값 평균 상승률(58.2%)에 못 미치는 경우도 있어 언뜻 보기엔 투자가치가 없는 것 같지만, 현장의 목소리는 달랐다. A씨는 “아파트 가격 자체가 워낙 고가이다 보니 상승률이 낮아도 시세차익은 더 크게 발생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예를 들어 2016년 서울 아파트의 평균 실거래가는 5억3,300만원이었지만, 현재는 8억4,400만원으로 올랐다. 아파트 값이 58.2% 올라서, 매매가 이뤄졌다면 3억1,000만원 정도의 시세차익이 발생한 셈이다. 반면 한남더힐은 2016년 45억원에 매매된 아파트가 올해는 56억원에 거래됐다. 24% 정도 상승한 것이지만, 11억원의 차익이 발생해, 수중에 들어온 돈은 다른 아파트 매매 때보다 훨씬 크다.
실제로 단기간에 상당한 시세차익을 본 사례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다. 2018년 9월 235㎡를 42억9,000만원에 사들인 김모(54)씨는 이 집을 지난해 11월 49억3,000만원에 되팔았다. 1년2개월 만에 6억4,00만원의 차익을 실현한 것이다. 또 2017년 4월 34억7,000만원에 거래된 208㎡ 아파트는 같은 해 12월 39억원에 거래돼 8개월 만에 4억3,000만원의 차익이 발생했다. 이에 대해 시중은행의 한 자산관리 전문가는 “정부의 각종 규제가 한남더힐에서만큼은 큰 힘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는 증거”라고 말했다.
담보대출 없는 가구 44%... 다주택자도 절반
한국일보 분석 결과 정부의 대대적인 대출규제 정책(투기과열지구 내 시가 15억원 초과 아파트 주택담보대출금지ㆍ시가 9억원 초과분에 주택담보인정비율(LTV) 20% 적용 등)이 발표된 지난해 12월 16일 이후 한남더힐에는 총 28건의 거래가 있었는데, 이 중 딱 한 채를 제외한 모든 가구의 주인들은 대출 없이 집을 매입했다. 또 전체 600가구 중 44%인 262가구가 주택담보대출 없이 최소 8억원에서 최대 84억원의 현금을 지불하고 아파트를 구매한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의 부동산 대책 중 가장 강력한 카드인 대출규제가 '현금 부자'인 이들에게는 큰 영향이 없었던 셈이다. 우병탁 신한금융그룹 부동산자문센터 팀장은 “담보대출 없는 가구의 비율이 40%가 넘는다는 것은 다른 아파트단지보다 훨씬 높은 수치”라며 “구매자들의 자산규모 자체가 차원이 다르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한남더힐은 정부의 또 다른 강력한 부동산 대책인 다주택 규제의 효과도 점쳐볼 수 있는 곳이다. 전체의 절반에 가까운 270가구의 등기상 실거주지가 다른 지역으로 돼 있기 때문이다. 이는 집이 두 채 이상이거나 다른 주택에 전세 또는 월세를 살면서 한남더힐 아파트를 구매했다는 의미다. 인근 공인중개사 B씨는 “한남더힐 소유자들은 이 아파트를 ‘세컨드하우스’ 개념으로 사용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며 “그럼에도 (다주택을 벗어나기 위해) 아파트를 처분하겠다고 연락이 오는 사람은 많지 않다”고 귀띔했다. 세금을 올려 다주택자들이 집을 내놓게 하겠다는 정부 정책이 적어도 한남더힐 소유자들 사이에서는 큰 효과를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는 의미다.
공시지가 현실화율 낮아... 과세 형평성 저해
한남더힐의 개별공시지가가 실거래가보다 현저히 낮아, 정책과 현실의 괴리를 보여준다는 지적도 나온다. 정부는 지난해 12월 실거래가 대비 공시지가 비율(현실화율) 목표치를 △시세 9억~15억원 주택 70% △15억~30억원 주택 75% △30억원 초과 주택 80%로 잡았다. 하지만 한남더힐의 올해 상반기 매매 중 가장 최근 거래를 살펴본 결과 현실화율은 이 수치를 크게 밑돌았다. 예를 들어 59㎡ 아파트(공시지가 13억1,900만원)는 22억3,000만원에 거래돼 현실화율은 59.1% 수준이었다. 목표치 75%는커녕 해당 시세구간(15억~30억원)의 전국 평균 현실화율 74.6%에도 한참 못 미쳤다. 다른 평형 아파트의 현실화율도 △177㎡ 72.2% △208㎡ 71.1% △233~235㎡ 69.9%로, 정부 목표치(80%)와 전국 30억원 초과 아파트 평균 현실화율(79.5%)보다 낮았다. 가장 큰 평수대인 240~243㎡ 아파트는 올해 9월 최고 매매가인 77억5,000만원을 기록해 현실화율이 63% 수준에 머물렀다. 최근 정부와 여당이 10년 내에 현실화율을 90%까지 끌어올리겠다고 발표했지만, 갈 길은 더욱 멀어 보인다.
이에 대해 원종훈 KB WM투자자문부 부장은 ”일반 아파트에 비해 현실화율이 낮은 이유는 초고가 아파트라서 매매 자체가 상대적으로 적기 때문”이라며 “거래가 활발하면 시세가 많이 노출돼 공시지가 평가가 수월하지만, 한남더힐의 경우 매매가 적다 보니 시세와 공시지가 간 갭이 커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문제는 이처럼 특정 아파트의 현실화율이 떨어지면 과세형평성이 저해될 수 있다는 점이다. 공시지가는 재산세의 산정 근거가 되는데, 아파트마다 현실화율이 다르면 당연히 납세비율도 달라지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서울 노원구 한신2차 아파트(45㎡)의 현실화율은 80%에 달하는데, 이는 이 아파트 주민들은 시세의 80%에 해당하는 가격을 근거로 재산세가 산정된다는 의미다. 하지만 한남더힐의 대다수 아파트는 시세의 60~70%를 근거로 재산세가 매겨진다. 비싼 아파트 주민들의 재산세 납세비율이 상대적으로 저렴한 아파트 주민들에 비해 낮아지는 것이다.
전재범 강원대 교양교육원 부동산전공 교수는 “이처럼 공정성과 합리성이 떨어지는 과세가 지속되면 정부 정책에 대한 불신이 커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김남근 법무법인 위민 변호사도 “과세가 형평성에 어긋난다는 것은 헌법정신에 위배된다는 의미로도 볼 수 있다”며 “공시지가의 경우 최종 목표치를 정했으면, 주택유형별ㆍ가격별ㆍ지역별로 세분화해 맞춰 가야 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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