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종의 길’에서 만난 최명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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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종의 길’에서 만난 최명길

입력
2020.10.16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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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조지은에 사로잡힌 조선 지배엘리트
자강 없이 외세에 의존 ‘장중지물’ 전락
아관파천길에서 한미 동맹 ‘미래’ 궁금

편집자주

매주 수요일과 금요일 선보이는 칼럼 '메아리'는 <한국일보> 논설위원과 편집국 데스크들의 울림 큰 생각을 담았습니다.

영화 남한산성에서 최명길 역으로 분장한 이병헌. CJ엔터테인먼트 제공



서울 도심 한복판에 ‘고종의 길’이 있다. 정동을 고즈넉이 감싸고 있는 덕수궁 돌담길에서 구 러시아 공사관까지 120m 남짓한 사잇길을 말한다. 점심 나절이면 인근 직장인들의 발걸음이 줄을 잇는다.

서세동점 격동의 구한말, 1896년 2월 11일 미명을 틈타 고종이 궁녀의 가마를 타고 경복궁 동문 건춘문을 몰래 빠져 나와 러시아 공사관으로 이어(移御)할 때 변통했던 길이다. 역사는 이 치욕의 순간을 아관파천으로 기록하고 있다. 알려진 바, 당시 고종과 세자는 일본 경비병의 눈을 피하기 위해 궁녀의 옷으로 변장했다고 한다. 임금이 자기 집을 버리고 남의 집으로 도망쳐 들어간 끝자락에, 역사적 앞뒤 맥락을 무시한 채 ‘고종의 길’로 포장해놨지만 실상은 망국의 길이요, 배국(背國)의 길이다.

제 나라, 제 백성을 등지고 외세의 힘을 빌려 권력을 유지하려는 치욕의 길은 또 있었다. 이보다 300여 년전 선조는 임진왜란의 누란지위에서 야반도주에 나섰다. 선조는 압록강을 사이에 두고 요동벌판을 마주하고 있는 평안도 의주까지 몽진 길에 오른 것도 모자라, 아예 명나라에 몸을 의탁하려 했다. 호종 공신들의 반발로 희대의 망명 계획은 무산됐지만 나라가 망한 것과 다름없다.

조선의 지배엘리트들이 목숨처럼 떠받든 명나라에 대한 재조지은이 부른 화는 더 참혹했다. 임란때 명군의 구원으로 종묘사직을 보존했으니, 은혜를 갚아야 한다는 재조지은 명분은 결국 병자호란 빌미를 제공, 삼전도의 굴욕을 잉태했고, 수많은 조선 여인들에게 화냥년이란 굴레를 씌웠다. ‘청나라=오랑캐’로 프레임을 구축한 척화파들이 대책없이 항전을 외쳤기 때문이다. 이조판서 최명길만이 항복할 것을 읍소했지만 돌아온 것은 만고역적이라는 매도와 “목을 베라”는 상소문이었다. 나약한 주화파로 낙인찍힌 최명길은 그러나 병자호란 발발 1년 전에 청과 전쟁이 불가피하다면 강화도가 아니라 의주에서 결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새삼 척화파와 주화파의 옳고 그름을 따지려는 게 아니다. 역사에 ‘만약 ~했더라면’이라는 가정법에 기대는 것처럼 부질없는 일도 없다. 중요한 것은 교훈을 통한 성찰이다. 명나라에 대한 사대로 조선이 얻은 것은 외적의 말발굽이었다. 게다가 명은 이미 망한 뒤였다.

왕조 국가에서 공화국으로 국체가 바뀐 지 한 세기가 지났지만 한국사회에서 재조지은 명분은 여전히 유효하다. 상대는 태평양 건너 미국이다. ‘빨갱이’들로부터 나라를 구해주었다는 논리다. ‘자랑스러운’ 한미동맹 70년의 역사다.


문화재청 홈페이지 캡처


다시 ‘고종의 길’ 위다. 아관파천 1년간 고종은 일신에 대한 안위를 보장받았지만 반대급부로 온갖 경제적 이권을 러시아에 넘겨줘야 했다. 외국 공관에 몸을 의탁해 나라의 체면을 손상시킨다는 안팎의 비난에 고종은 1897년 2월 25일, 경운궁(덕수궁)으로 환궁한 뒤, 같은 해 10월 12일 대한제국을 선포하며 황제에 등극했다. 하지만 허울뿐인 제국을 인정해 줄 이웃은 없었다. 대한제국 이후의 역사는 우리가 다 아는 그대로다.

자강 없이, 외세에 기대는 순간, 손안의 노리개(掌中之物)로 전락한다는 것이 동서고금의 교훈이다. 최명길은 인조반정 일등공신이었지만, 존화 명분론이 아닌, 제 나라 백성의 생존과 안위를 위해 잠시 ‘죽는 길’을 택했다.

미 대선이 불과 10여일 앞으로 다가왔다. 모든 여론조사가 트럼프의 패배를 예고하고 있는 가운데 전작권 전환과 방위비 분담을 놓고 한미동맹에 잡음이 들린다. 트럼프와 바이든, 백악관의 새 주인이 누가 되든 안보청구서 들이밀기와 북핵 대응 샅바싸움은 계속될 것 같다. ‘고종의 길’에서 최명길의 고뇌를 떠올려 본다.

최형철 에디터겸 논설위원 hcchoi@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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