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서초구에 사는 김민지(32ㆍ가명)씨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길어지면서 수입이 반토막났다. 영유아부터 중고등학생들을 대상으로 수학 과외를 하는데 가까이에 앉아 대면수업을 하는 것에 불안을 느낀 학부모들이 줄줄이 수업을 한두 달 뒤로 미루거나 아예 취소해버렸기 때문이다. 상반기에만 해도 "이 때만 지나면 괜찮을 거야"라고 다독이며 버텼지만, 코로나19가 10개월여 이어지면서 김씨의 불안은 점점 커져만 갔다. 상시적인 불안은 결국 깊은 우울감으로 이어졌다. 김씨는 "내가 잘못한 것도 없는데 과외가 줄줄이 끊기고, 다달이 갚아야 할 빚을 갚지 못하는 상황이 되니 벼랑 끝에 몰린 기분"이라며 "하루종일 집 안에서 걱정거리만 싸매고 있으니 보다 못한 엄마가 상담센터를 권유해 한 달째 다니고 있다"고 말했다.
올해 1월 시작된 코로나19가 장기화하면서 걱정과 두려움, 불안, 우울 등 정신적인 고통을 호소하는 사람들이 급증하고 있다. 8월 중순 수도권을 중심으로 2차 대유행이 발생하면서 외부활동이 크게 제한되고 경기도 침체되는 암울한 분위기가 이어지자 극단적인 선택을 생각하는 사람들의 비중도 급격히 늘었다.
보건복지부와 한국트라우마스트레스학회가 16일 발표한 '코로나 우울에 대한 3분기(9월) 실태조사'에 따르면 두려움ㆍ우울ㆍ불안 및 자살에 대한 사고(思考) 등 대부분의 정신건강 지수가 2분기(5월) 조사 때보다 악화된 것으로 나타났다. 이번 조사는 3ㆍ5월에 시행된 1ㆍ2차에 이은 세 번째 조사로, 9월 10~21일 전국시도 19~70세 2,063명(신뢰도 95%)을 상대로 온라인 설문 방식으로 진행됐다.
세부적으로 '걱정과 두려움'에 대해 현재의 상태를 물은 결과 9월은 평균 1.77점(점수가 높을수록 악화)으로 3월(1.73점)과 5월(1.59점) 대비 가장 높았다. 불안감은 9월 5.22점으로, 3월(5.53점)보다는 낮았지만 5월(4.56점)보다는 크게 높아졌다. 코로나19 사태 초기 대구ㆍ경북 지역을 중심으로 급격히 퍼지면서 높아진 불안감이 점점 감소했다가 다시 2차 대유행과 장기화로 높아진 것으로 풀이된다. 실제 불안의 경우 응답자 점수가 10점 이상일 경우 위험군으로 분류하는데, 9월 그 비중은 전체 응답자 가운데 18.9%에 달했다. 5월(15%)과 비교하면 크게 증가한 것이고, 3월(19%)과 유사한 수준이었다. 우울을 호소하는 사람들도 급격히 늘긴 마찬가지였다. 9월 전국 평균 5.86점을 기록한 우울감은 5월(5.12점)과 3월(5.10점)에 비해 높아졌다. 마찬가지로 응답자 점수가 10점 이상인 우울 위험군은 응답자의 22.1%로, 5월(18.6%) 3월(17.5%)과 비교해 크게 증가했다.
무엇보다 우려스러운 부분은 극단적인 선택을 생각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는 점이다. '최근 2주간 차라리 죽는 것이 낫겠다고 생각하거나 어떻게든 자해를 하려고 생각한다'를 묻는 자살사고와 관련한 설문에 9월 응답자의 13.8%가 '그렇다'고 답했다. 같은 설문에 3월과 5월에는 '그렇다'고 답한 응답자가 각각 9.7%와 10.1%에 머물렀다는 점을 감안하면, 코로나19 장기화로 비관적인 생각을 하는 국민들이 많아지고 있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전반적으로 걱정과 두려움, 불안, 우울을 호소하는 집단은 30대, 여성이 다수였으나 자살사고의 경우 20대, 남성이 더 많은 것으로 집계됐다. 특히 20대의 자살사고 비중은 5월(15.8%) 조사 때부터 급격히 높아져 9월에는 19.9%에 달했다. 평균보다 무려 5%포인트 높은 셈이다. 이는 취업 등에 대한 불확실성이 커지고, 단기적인 일자리마저 구하기 어려워지면서 경제적 어려움이 가중된 것에 따른 영향인 것으로 분석된다.
코로나19로 일상생활에 방해를 받는 정도는 3월(5.87점ㆍ30점 만점에 대한 평균)에 급증했으나 5월(4.88점) 생활방역시기에 주춤하다 9월(5.32점) 들어 다시 늘었다. 사회ㆍ여가활동 방해(6.64점)가 가장 많았고, 가정생활방해(4.74점), 직업방해(4.57점) 등이 뒤를 이었다. 일상에서의 스트레스는 계획했던 일이 제대로 진행되지 않거나 경제적 어려움, 가짜뉴스로 인한 혼란 등 때문인 경우가 많았다. 이에 대처하기 위해 필요한 서비스로는 감염병 관련 정보와 개인 위생용품, 경제적 지원 등이 대부분이었다.
정신적 어려움을 호소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전화상담을 이용할 의향이 있는 사람은 늘었지만, 여전히 대부분의 사람들은 정부가 무료로 제공하는 정신건강상담전화(1577-0199)를 알지 못했다. 전화상담을 이용할 의향이 있다고 답한 사람은 9월 기준 60.9%였지만, 이를 아는 사람은 19.1%에 불과했다. 실제 이용 경험이 있다고 응답한 사람은 6.3%에 그쳤다.
현진희 한국트라우마스트레스학회 회장은 "코로나19가 장기화하면서 전반적인 정신건강은 악화되고 있다"며 "특히 9월 들어 정신건강 관련 지표가 악화된 건 사회적 거리두기 강화로 인한 영향도 있다"고 설명했다. 물론 이는 재난 상황에 대한 자연스러운 스트레스 반응으로 병리학적 질환은 아니지만, 전반적인 국민들의 정신건강이 위태로워질 경우 극단적 선택으로 연결될 수 있어 관리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현 회장은 "정신건강 측면에서는 20~30대와 경제적 취약계층 등이 특히 고위험군"이라며 "이들의 우울감과 자살사고가 우울증과 자살시도로 이어지지 않게 정부의 적극적이고 신속한 관심과 지원이 필요하다"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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