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YT "전문성과 회피술 능숙하게 혼합"
낙태 등 곤란한 질문에 "대답할 수 없다"
공화당, '트럼프와 거리두기' 칭찬일색
"그런 가상의 질문에 추상적으로 답할 수 없습니다."
에이미 코니 배럿 미국 연방대법관 후보자가 지난 12일부터 나흘간 진행되는 인준 청문회에서 '회피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전국민의료보험(오바마케어)나 낙태 문제 같은 곤란한 질문에는 좀처럼 속내를 드러내지 않는 식으로 대처한다는 것이다. 알맹이 없는 청문회라는 비판이 나오지만, 공화당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의 '거리두기'로 평가하며 만족해하는 분위기다.
미국 뉴욕타임스(NYT)는 14일(현지시간) 인준 청문회에 나선 배럿 후보자에 대해 "전문성과 회피를 능숙하게 혼합해 답변하고 있다"고 촌평했다. 배럿 후보자가 대법원 판례를 인용해 쉽게 설명하려는 친숙함을 보이기도 하지만 자신의 입장을 적극 내세우는 발언은 극도로 삼가고 있다는 분석이다. 미 정치 전문매체 폴리티코는 "배럿 후보자는 민주당 의원들의 질문에 거의 발을 헛디디지 않았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정치적으로 불꽃이 튈 만한 상황인데도 이번 청문회는 열기가 거의 없다"고 진단했다. 청문회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논쟁거리나 사이다 발언 등 드라마틱한 장면이 전혀 없었다는 것이다.
실제 배럿 후보자는 자신에게 불리하거나 정치적으로 논란이 될 만한 질문에 시종일관 "대답할 수 없다"고 회피했다. '사회보장제도나 오바마케어가 헌법상 정부 권한을 넘어선다는 학자들의 의견에 동의하느냐'는 질문에는 "검토한 적이 없어 대답할 수 없다"고 했다. 대법원의 낙태 관련 판결에 대한 입장을 요구받았을 때는 "뭐라고 대답하든 향후 소송 당사자들에게 법관이 편향됐다는 인상을 줄 수 있다"며 답변을 거부했다.
배럿 후보자의 회피 전략은 앞선 대법관 후보자들이 청문회에 임하는 공식을 철저히 따랐다는 분석이 나온다. 1987년 공화당 소속 로널드 레이건 당시 대통령이 지명한 로버트 보크 대법관 후보자가 낙마했을 때 그가 보수적인 입장을 솔직하게 드러냈기 때문이란 분석이 중론이었다. 그 이후 대법관 후보자들은 청문회에서 최대한 답변을 회피하거나 상투적인 발언을 반복하고 있다고 NYT는 전했다.
그의 '회피 화법'은 트럼프 대통령과 관련된 질문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즉답을 피하며 정치적 거리를 유지한 것이다. 배럿 후보자는 '대통령이 스스로를 사면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질 수 있느냐'는 질문에 "법에 명시돼 있지 않으며 내가 의견을 제시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다"고 잘라 말했다. '대통령이 인종에 따라 투표권을 부정할 수 있는 권한을 갖게 된다면 어떠한가'라는 질문엔 "(수정헌법이) 인종과 투표를 기반으로 한 차별을 금지하고 있다"면서도 "가상의 질문이라 어떠한 말도 할 수 없다"고 선을 그었다.
배럿 후보자의 회피 전략은 민주당의 기를 꺾어 놨다고 폴리티코는 전했다. 민주당은 이번 청문회에서 트럼프 대통령과 관련해 오바마케어와 낙태, 선거 관련 소송에 관해 집중 추궁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배럿 후보자는 민주당이 제기한 트럼프 대통령과의 결속 의혹을 크게 뿌리치며 회피했을 뿐만 아니라 "대통령이나 백악관의 누구와도 거래하지 않았고, 앞으로도 거래할 의향이 없다. 나는 독립적이다"고 못박았다. 폴리티코는 "배럿의 이런 자세는 청문회에서 민주당원들을 좌절시켰다"며 "그들이 오바마케어와 낙태에 대한 질의에 집중했지만, 공화당 의원들이 예상한대로 배럿의 (낙태에 관한) 종교주의는 끌어내지도 못했다"고 평가했다.
공화당에선 화색이 돌고 있다. 미 언론들은 배럿 후보자의 회피 전략에 "공화당이 찬사를 보냈다"고 보도했다. 민주당의 공격을 회피 전술, 대통령과의 선긋기로 능숙하게 넘기며 성공적으로 잘라냈다는 얘기다. 린지 그레이엄 상원 법사위원장은 "배럿이 유능하고 독립적이라는 것에 의심의 여지가 없다"며 유독 '독립성'을 강조했다. 때문에 공화당이 배럿 후보자와 트럼프 대통령을 분리시키려 한다는 해석도 있다. 폴리티코는 "공화당은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여론이 좋지 않기 때문에, 오히려 배럿이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게 대통령에게도 정치적 이득이 될 수 있다고 판단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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