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닫기

알림

베를린 '소녀상' 철거 보류됐지만…해외 소녀상들 괜찮을까

입력
2020.10.15 14:14
수정
2020.10.15 19:24
0 0

세계로 나간 '평화의 소녀상' 수난기
2013년 미국 내 첫 건립…오물 테러 맞기도?
필리핀, 日 압박에 철거…중국은 철거 거부

13일 독일 수도 베를린에서 시민들이 거리에 설치된 '평화의 소녀상'에 대한 당국의 철거명령에 항의하기 위해 미테구청 앞에서 시위를 벌이고 있다. 연합뉴스

13일 독일 수도 베를린에서 시민들이 거리에 설치된 '평화의 소녀상'에 대한 당국의 철거명령에 항의하기 위해 미테구청 앞에서 시위를 벌이고 있다. 연합뉴스


독일 수도 베를린 거리에 설치된 '평화의 소녀상'의 철거가 보류됐지만 안심할 수는 없죠. 독일은 당초 일본의 요구를 받고 철거 명령을 내렸다가, 각계 반발이 거세지자 법원의 판단이 나올 때까지 일단 두기로 했어요. 철거 명령 중지 가처분신청에 대한 법원의 판단에 따라 소녀상의 운명도 갈릴 것으로 보입니다.

해외에 있는 소녀상의 수난, 잊을 만하면 반복되죠. 해외 곳곳에 세워질 때마다 일본의 반대가 심해 장소가 갑자기 바뀌는 등 우여곡절이 이어졌으니까요. 해외로 떠난 소녀상들은 모두 어디에 있고,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요.


소녀상, 왜 해외로 나갈까

1970년대 '청계천 빈민의 성자'로 불렸던 일본인 노무라 모토유키 목사가 2012년 2월 서울 중학동에 위치한 주한일본대사관 소녀상 평화비를 찾아 헌화를 하며 눈시울을 적시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1970년대 '청계천 빈민의 성자'로 불렸던 일본인 노무라 모토유키 목사가 2012년 2월 서울 중학동에 위치한 주한일본대사관 소녀상 평화비를 찾아 헌화를 하며 눈시울을 적시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일본군 위안부에 관한 평화상은 크게 미술작가가 제작한 동상 등 평화비와 비석과 같은 기림비로 나뉘는데요. 소녀상으로 잘 알려진 평화비는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의 역사적 사실을 기억하며 이 같은 비극이 또다시 생기지 않고, 세계 곳곳에서 발생하는 전시 성폭력이 중단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담겨 있어요. 더불어민주당 이용선 의원실이 정의기억연대로부터 제출 받은 자료에 따르면 국내에는 3월 기준 총 131개가 설치돼 있습니다.

우리가 아는 소녀상은 작은 의자에 걸터앉은 소녀가 일본 대사관을 조용히 응시하는 모습으로 강렬한 메시지를 전하고 있죠. 거칠게 뜯겨진 듯한 머리카락, 꼭 움켜쥔 두 손, 맨발과 발꿈치가 들려 있는 모습까지. 성폭력 피해를 입은 아픔과 진심 어린 사과를 받아내겠다는 결연한 의지가 잘 표현돼 있습니다.

지금까지 32개의 평화상이 해외로 나가 전쟁의 아픔과 평화의 가치를 전파했는데요. 1985년 후카즈 후미오 목사가 일본 치바현의 한 마을에 설치한 위령비 '아아, 종군위안부'를 시작으로 미국, 독일, 중국, 대만, 필리핀, 호주 등에 여러 형태의 평화상이 설치됐어요.

베를린의 소녀상이 철거 위기에 처하자 위안부 피해자인 이용수(92) 할머니는 14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는데요. 이 할머니는 "세계 역사와 인권 문제 해결의 상징인 평화의 소녀상 철거 주장은 절대 있을 수 없다"며 "한국뿐 아니라, 아시아 전체에 피해자들이 있다. 소녀상을 세워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우리의 비극을 알리는 것에서 나아가 세계 여성의 인권과 평화 실현을 염원하는 차원에서도 소녀상은 존재할 가치가 있다는 것이겠죠.


해외 최초의 '소녀상' 운명은?

지난해 11월 미국 캘리포니아주 글렌데일 중앙도서관 앞에 평화의 소녀상이 설치돼 있다. 글렌데일 소녀상은 올해로 건립 7주년을 맞은 상징물로 미국 내 처음 세워진 소녀상이다. 연합뉴스

지난해 11월 미국 캘리포니아주 글렌데일 중앙도서관 앞에 평화의 소녀상이 설치돼 있다. 글렌데일 소녀상은 올해로 건립 7주년을 맞은 상징물로 미국 내 처음 세워진 소녀상이다. 연합뉴스


한국을 제외하면 세계에서 평화상이 가장 많이 설치된 나라는 미국입니다. 2010년 10월 미국 뉴저지주의 팰리세리즈팍 공립 도서관 옆에 시민참여센터가 기림비를 세운 것이 최초죠. 이후 2012년 6월 뉴욕주 롱아일랜드 낫소카운티 아이젠하워공원 베테랑스 메모리얼(현충원)과 2013년 3월 뉴저지주 버켄카운티 메모리얼 아일랜드 등에도 기림비가 세워졌습니다. 지금까지 15개의 평화상이 미국에서 위안부들의 메시지를 전했죠.

우리가 잘 아는 소녀상은 같은 해 7월 캘리포니아주 글렌데일 시립공원 공립도서관 앞뜰에 처음 등장했어요. 2013년 동포들이 성금을 모아 최초로 해외에 소녀상을 세웠습니다.

그런데 소녀상이 피해자의 아픔을 너무 생생하게 표현했던 걸까요. 일본이 거세게 반발했습니다. 이듬해 일본의 극우단체가 미국 법원에 철거를 요구하는 소송을 제기했어요. 2017년 미 연방대법원은 각하 결정을 내려 소송을 종료시켰습니다.

하지만 소녀상의 수난은 계속되고 있는데요. 소녀상 건립을 적극 추진했던 프랭크 퀸테로 전 글렌데일 시장은 지난해 10월 노스리지대에서 개최된 위안부 다큐멘터리 영화 '주전장(主戰場)'의 상영회에서 "올해 부임한 무토 아키라 LA 주재 일본 총영사가 '총영사로서 내 임무는 글렌데일 소녀상을 철거하는 것 뿐'이라고 말했다"고 밝혔습니다. 또 건립 당시 일본에서 1,000통이 넘는 증오 편지를 받았다고 고백하기도 했죠. 지난해에는 동물의 배설물을 소녀상에 묻히는 오물 테러가 여러 차례 발생하기도 했습니다.


필리핀에서만 두 번 철거된 소녀상

필리핀 북부 라구나주(州) 산페드로시에 설치된 평화의 소녀상은 건립 이틀 만에 철거됐다. 연합뉴스

필리핀 북부 라구나주(州) 산페드로시에 설치된 평화의 소녀상은 건립 이틀 만에 철거됐다. 연합뉴스


일본은 외교 공관을 중심으로 집요하게 설치를 방해하거나 로비를 통해 소녀상을 핍박해왔는데요. 필리핀에 있는 3개의 소녀상도 일본의 압박에 시달렸어요.

2017년 12월 중국계 필리핀 사업가가 만들어 마닐라 베이 산책로에 세운 소녀상은 일본 정부가 재정 지원을 빌미로 철거를 요구하면서 4개월 만에 기습 철거됐어요. 당시 마닐라시는 배수시설 개선 작업을 위해 철거한 것이라 해명했지만, 필리핀 정부가 일본의 불만을 받아들인 것이라는 해석이 많았죠. 철거된 소녀상은 1년 동안 한 조각가의 개인 창고에 보관돼 있다가, 지난해 도난당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2018년 12월 필리핀에 설치된 소녀상은 단 이틀 만에 사라졌어요. 주 필리핀 일본대사관이 항의 성명을 발표한 직후 철거됐죠.

사유지에 세운 덕분에 살아남은 소녀상도 있어요. 필리핀 유명 관광지 보라카이 섬으로 들어가는 관문인 파나이섬 카티클란에 있는 소녀상인데요. 필리핀 인권운동가 넬라이 산초가 위안부 피해를 당한 필리핀 여성을 모델로 세운 것입니다. 산초는 이 동상을 자신이 소유한 주차장에 세우고 "이제 동상을 철거하라는 압력을 받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죠. 사유지에 동상을 세웠으니, 일본이 압박해도 철거할 필요가 없다는 겁니다.


日 철거 압박에…"도쿄에도 세워라" 일침 가한 中

'일본군 성노예 피해 문제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를 위한 국제연대회의'는 2016년 중국 상하이사범대 원위안(文苑) 루 앞 교정에 한중 위안부 '평화의 소녀상'을 제막했다. 폭우속에서 진행된 제막식에서 위안부 피해자인 한국 이용수(당시 88세) 할머니가 소녀상의 얼굴을 닦아주고 있다. 연합뉴스

'일본군 성노예 피해 문제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를 위한 국제연대회의'는 2016년 중국 상하이사범대 원위안(文苑) 루 앞 교정에 한중 위안부 '평화의 소녀상'을 제막했다. 폭우속에서 진행된 제막식에서 위안부 피해자인 한국 이용수(당시 88세) 할머니가 소녀상의 얼굴을 닦아주고 있다. 연합뉴스


그런가 하면 일본의 철거 압박에 적극 대처한 나라도 있어요. 중국 정부는 2016년 자국에 첫 설치된 위안부 소녀상을 두고 일본 정부가 유감을 표하자 강하게 반발하고 나섰죠. 루캉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정례회견에서 "우린 일본이 역사에 책임을 지고 인류의 양심과 인권을 존중하는 태도를 가지길 엄숙하게 촉구하며, 일본 군국주의가 침략 전쟁 중 저지른 심각한 범죄를 반성하고 국제 사회와 아시아 이웃국의 신뢰를 얻기 위해 구체적인 조치를 취할 것을 촉구한다"고 밝혔습니다.

이어 "도쿄에도 위안부 동상을 세울 수 있다면, 일본은 역사의 부담을 덜 뿐만 아니라 아시아 이웃 국가의 이해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며 일본의 잘못된 역사 인식을 꼬집었어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군의 반인륜적 만행을 기억하는 중국 역시 한국의 편에서 일본 정부를 비난하고 나선 것이죠.

어쩌면 국내에서보다 더 험난한 임무를 수행하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해외에 건립된 소녀상들은 무사히 살아남을 수 있을까요. 베를린의 소녀상에 대해 일본은 "독일의 움직임을 지켜보겠다"는 입장이에요. 추가 조치를 하지 않고 일단 법원의 판단을 기다리겠다는 뜻으로 해석됩니다.

소녀상이 살아남아 평화의 메신저로서 제 역할을 다 해낼 수 있기를 바라봅니다.



이소라 기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