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억제책으로 뚜렷한 효과가 입증되지 않은 ‘집단면역’ 정책을 계속 밀어붙이고 있다. 봉쇄를 풀되, 노년층 등 고위험군을 집중 보호하면서 일상생활을 가능하게 하자는 일부 과학자들의 주장을 공론 영역까지 끌어 올렸다. 그러나 세계보건기구(WHO) 등 보건 전문가들은 “백신 없는 집단면역이 훨씬 더 위험할 수 있다”며 극구 반대하고 있다.
13일(현지시간) 미 일간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전날 열린 백악관 회의에서 고위 정부관계자 두 명이 집단면역 전략인 일명 ‘그레이트배링턴 선언’을 인용했다. 이 선언문은 “현재의 봉쇄정책은 공중보건에 장ㆍ단기적으로 치명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전제한 뒤 “코로나19 사망 위험을 최소화한 건강한 젊은층이 정상 생활을 하게 하면서 노인층 등 고위험군은 집중 보호하자”는 내용을 담고 있다. 매사추세츠주(州) 그레이트배링턴에서 처음 작성돼 이런 이름이 붙었다. 결론적으로 집단면역을 단순히 옹호하는 데서 나아가 정책화하겠다는 백악관의 속내가 명확히 드러난 셈이다. 선언문에는 전 세계에서 9,000명이 넘는 과학자가 서명한 것으로 돼 있지만, 몇몇 가짜 이름도 나열돼 있다고 미 시사주간 뉴스위크는 지적했다.
백악관은 이미 집단면역을 코로나19 대응 선택지로 고려하겠다는 신호를 꾸준히 보내왔다. 4일 선언문 작성을 주도한 마틴 컬도프 하버드대 교수, 수네트라 굽타 영국 옥스퍼드대 교수 등이 이튿날 곧장 백악관으로 불려가 관련 내용을 브리핑했다. 알렉스 에이자 보건복지부 장관과 집단면역 확신론자인 트럼프 대통령의 의학고문 스콧 애틀러스가 마련한 자리였다. NYT는 “봉쇄령에 반대하고 집단면역에 의존하는 선언문을 백악관이 받아들인 것”이라고 해석했다.
백악관의 집단면역 카드는 11월 대선과 맞닿아 있다. 한 관계자는 선언문에 대해 “취약계층을 적극 보호하고, 모든 학교 및 기업 개방, 장기화한 폐쇄조치 종식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설명했다. ‘완전한 경제 복원’이 최종 목표라는 얘기다. 봉쇄를 마뜩잖아 하며 경제 활성화를 줄곧 주장한 트럼프 대통령의 인식과 일맥상통하다. 또 다른 관계자는 “올 가을 캠퍼스로 돌아온 수천명의 대학생들 중 수백명이 확진 판정을 받았지만, 입원 건수는 거의 없고 사망자도 알려지지 않았다”고 집단면역을 옹호했다.
전문가들은 집단면역은 이론상의 대책일 뿐, 실생활에 적용하기엔 너무 위험하다고 경고한다. 사이먼 클라크 영국 레딩대 세포생물학과 교수는 최근 영국 BBC방송 인터뷰에서 “집단면역의 성공 여부는 장담할 수 없다”며 “코로나19 감염 후 생성되는 면역력이 얼마나 지속되고 효과적일지 모르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테워드로스 거브러여수스 WHO 사무총장도 “집단면역은 백신 접종 인구가 일정 수준에 도달할 경우 사람들을 특정 바이러스로부터 보호할 수 있다는 말이지 바이러스에 노출시키는 게 아니다”라고 맹비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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