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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스클럽서 운동하는 아프간 여성들... 탈레반 어떻게 나올까

입력
2020.10.14 13:00
수정
2020.10.14 19:41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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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레반 거점에 첫 여성 전용 헬스장

아프가니스탄 여성들이 지난달 칸다하르의 한 헬스장에서 운동을 하고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아프가니스탄 여성들이 지난달 칸다하르의 한 헬스장에서 운동을 하고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아프가니스탄 여성들은 요즘 헬스클럽에서 운동한다. 거짓말 같지만 실제 일어나고 있는 일이다. 아프간이 어떤 나라인가. 무장단체 탈레반이 권력을 장악한 뒤 수십년간 ‘여성 인권’이란 말 자체가 허락되지 않은 곳이다. 탈레반은 이슬람 교리를 따른다며 여성의 배울 권리마저 박탈했다. 이랬던 국가에서 여성이 전용 운동시설에서 몸을 가꾼다는 건 사건이라 할 만하다. 물론 탈레반이 건재하고 보수적 이슬람 문화의 전통도 굳건하다. 빼앗겼던 몸에 대한 통제권을 완전히 찾을 수 있을지, 아프간 여성들은 지금 기로에 서 있다.

미국 일간 뉴욕타임스(NYT)는 12일(현지시간) 아프간 남부 칸다하르에 지난달 처음 문을 연 여성 전용 헬스장이 보수적인 이슬람 전통을 깨고 있다고 전했다. 해당 헬스장은 아프간 남서부 지역을 통틀어 유일한 여성 운동 공간이다. 시설 관리와 운영, 운동법 교육까지 모두 여성이 담당한다.

이 시설은 현지 비영리 여성단체 ‘카디자 쿠브라 여성협회’에 속해 있다. 설립자 마리암 두라니는 지역 라디오방송국 운영자이자 16년간 여성 권리를 위해 싸워온 인권 운동가다. 그는 2012년 미 시사주간 타임이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에 선정됐고, 같은 해 미 국무부가 주는 ‘용기있는 국제여성상’도 수상했다.

헬스장이 들어선 지역이 칸다하르라는 점도 의미심장하다. 1994년 탈레반이 태동한 곳이 바로 칸다하르로 2000년대 초까지 조직 심장부로 기능했다. 탈레반은 이슬람 율법 ‘샤리아’에 근거한 국가 건설을 주장하며 극단의 가부장적 태도를 견지해 왔다. 그 결과, 칸다하르는 아프간 제2의 도시임에도 여성의 여가 활동이 엄격하게 제한됐다. 공교육과 체육 활동을 금지하는 악습도 남아 있다. 이런 이유로 아프간은 국제올림픽위원회(IOC)의 제재를 받아 2000년 시드니올림픽에도 참가하지 못했다.

시설이 문을 열자 호응은 뜨거웠다. 사우디아라비아 영자신문 아랍뉴스는 “헬스장은커녕 학교를 다니는 것조차 금지된 아프간에서 전례 없는 일”이라고 놀라워했다. 로이터통신도 “일하는 여성과 주부 등 사회 각층의 여성들이 이 곳에서 운동을 하고 있다”고 전했다. 워싱턴 주재 아프가니스탄 대사관 역시 “여성 공동체를 추구하고 건강을 증진할 안전 공간이 마련됐다”고 반겼다.

하지만 벽을 완전히 허문 건 아니다. 사실 비관적 전망이 좀 더 우세하다. 우선 스포츠브라와 레깅스 등 편한 운동복 착용은 언감생심이다. 몸을 둘둘 싼 부르카나 니캅을 입어야 한다. 몸을 드러내는 것을 불온해 하는 사회적 시선 탓이다. 두라니는 “전체 회원의 40%가 가족에게 헬스장 출입 사실을 알리지 못하고 숨어서 운동하고 있다”고 말했다. 회원 수도 개장 당시 60명에서 30명으로 반토막이 났다.

모욕과 협박 등 '언어 폭력' 역시 위험 수위에 다다랐다. 헬스장에 계속 다닐 경우 죽이겠다며 돌을 던지기도 하고, 남성 지식인들은 샤리아법 위배를 이유로 비난 여론을 주도하고 있다. 그래서 헬스장은 창문 없는 지하에 위치해 있다.

최대 위협은 여전히 탈레반이다. 아프간 정부와 탈레반은 현재 통합정부 구성을 위한 평화협상을 진행하고 있다. 하지만 협상 의제에 여성 인권 이슈는 포함되지 않을 것이란 회의적 시각이 팽배하다. 21명으로 구성된 협상단에 이들의 권리를 대변하는 여성이 5명뿐이란 사실만 봐도 그렇다.

NYT는 “탈레반이 협상을 통해 합법적 권력을 회복하면 현재 성장 중인 여성 체육 활동에 종지부를 확실히 찍으려 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인도 방송 매체 위온도 “꿈을 좇는 여성들의 노력이 탈레반이 돌아오면 원상복귀될 수 있다”며 “그들은 이미 미국과 계약을 체결했으며 다시 한번 아프간을 통치하고 싶어한다”고 우려했다.

장채원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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