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령 간호사’ 놔둘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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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령 간호사’ 놔둘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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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0.14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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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간호사가 코로나19 격리 병동에서 근무를 마치고 지친 표정으로 밖으로 나오고 있다. 뉴스1

얼마 전 일부 간호사들이 불법 의료 행위를 했다는 이유로 고발당했다. 이들은 의료법에는 근거가 없는 일명 ‘PA(Physician Assistant) 간호사’들이다. 병원 현장에서는 ‘전문간호사’ ‘수술전담간호사’ ‘코디네이터’ 등으로 불린다. 이들은 의사가 부족한 일부 진료과를 중심으로 의사만 할 수 있는 의료 행위를 하고 있다.

PA 간호사는 병동 간호사에게서 환자 상태를 보고받고, 대리 처방이나 진료기록지 작성, 수술 보조, 상처 봉합, 각종 시술 등 전문적인 의료 행위를 한다. 하지만 법적 지위를 인정받지 못해 스스로를 ‘유령 간호사(ghost nurse)’라고 부른다.

PA 간호사 제도는 병원에서 부족한 의사를 보충하기 위한 고육책이다. 2016년 말 ‘전공의 수련 환경 개선 및 지위 향상법(일명 전공의법)’ 시행으로 전공의(인턴ㆍ레지던트) 수련 시간을 주당 80시간 이하로 제한하며 확대됐다. 병원 현장에선 의사를 구하기 어렵고 비용도 부담이 되자 PA 간호사를 활용하고 있다.

현재 전국 수련 병원의 92% 정도에서 4,000명 정도의 PA 간호사가 활동하고 있다. 올해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분당서울대병원(112명)과 창원 경상대병원(92명) 등 전국 국립대병원에만 972명의 PA 간호사가 있다. 국립암센터와 국립중앙의료원 등에서는 PA 간호사가 시행한 수술이 4만 건이 넘는 것으로 알려졌다.

24년차 지방 상급종합병원 간호사 A씨는 병원에서 PA 간호사를 얼마나 활용하는지 이렇게 말했다. “우리 병원에는 의사가 할 의료 행위를 대신하는 PA 간호사가 19개 진료과에 1~13명씩 모두 66명이나 배치돼 있어요. 전공의가 부족한 외과의 PA 간호사가 13명으로 가장 많아요.”

그런데 문제는 PA 간호사의 의료 행위가 현행 의료법 상 근거가 없는 불법 의료 행위라는 데 있다. 의료법 제27조 5항은 ‘의료인에게 면허 사항 외의 의료 행위를 하게 해서는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처럼 의료법과 의료 현장 사이에 괴리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주무 부처인 보건복지부는 ‘의료법상 근거가 없는 직종’이라는 이유로 PA 간호사의 실태 조사나 대책 마련을 미적거리고 있다. 몇 년 전부터 국정 감사 등에서 PA 간호사 문제를 조속히 해결하라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지만 답보상태다.

일부에서는 PA 간호사 합법화를 위해 유명무실한 ‘전문간호사’ 역할 확대를 주문하고 있다. 전문간호사란 최근 10년 이내 해당 분야 실무 경력이 3년 이상인 간호사 가운데 석사 과정을 이수하고 전문간호사 자격시험에 합격한 사람이다. 미국 캐나다 일본 등에서는 이미 활성화돼 있다.

2018년 의료법 개정으로 올해 초 전문간호사의 업무 범위를 정해야 하는데 복지부는 아직도 업무 범위를 정할 의료법 시행규칙을 내놓지 않고 있다. 대한의사협회도 간호사의 역할 확대에 미온적이다.

매년 2만여 명의 간호사가 배출되지만 절반 이상이 의료계를 떠나고 있는 게 현실이다. 그만큼 간호사들이 자신의 역할에 자긍심을 갖지 못하고 있다는 증거다. 정부는 부족한 간호사 문제를 푼다며, 앞으로 5년 간 간호학과 정원을 3배까지 늘리기로 했다. 하지만 ‘유령 간호사’라는 굴레조차 벗겨주지 못하면서 숫자 놀음만으로는 간호사 문제를 절대로 해결할 수 없다. 전형적인 오진이다.

권대익 의학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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