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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값과 도서정가제

입력
2020.10.13 18:00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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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

도서정가제 사수를 위한 출판문화계 공동대책위원회 관계자들이 지난 9월24일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도서정가제 사수 의지를 천명했다. 뉴스1

도서정가제 사수를 위한 출판문화계 공동대책위원회 관계자들이 지난 9월24일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도서정가제 사수 의지를 천명했다. 뉴스1


함민복 시인의 ‘긍정적인 밥’은 시의 가치를 사색한 작품이다. ‘시 한 편에 삼만 원이면/너무 박하다 싶다가도/쌀이 두 말인데 생각하면/금방 따뜻한 밥이 되네’로 시작해서 ‘시집 한 권에 삼천 원이면/든 공에 비해 헐하다 싶다가도/국밥이 한 그릇인데/내 시집이 국밥 한 그릇만큼/사람들 가슴을 따뜻하게 덥혀줄 수 있을까/생각하면 아직 멀기만 하네’로 이어진다. 이 시를 볼 때마다 미안했다. 이런 영혼으로 빚은 시집 한 권이 요즘에도 7,000원이 채 안 되기 때문이다.

▦ 비단 문학서적이 아니라도, 저자가 심혈을 쏟은 좋은 텍스트엔 섣불리 값을 매길 수 없는 심오한 가치가 있다고 믿는다. 요즘 책 같지 않은 책이 너무 많이 쏟아져 나온다 싶다가도, 그 속 어딘가에 누군가의 인생을 바꿀 한 줄의 문장이 담겨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책값이 비싸다고 느껴본 적이 거의 없다. 물론 편저에 불과한 중ㆍ고등학생용 참고서가 수만 원씩 하는 건 좀 지나친 것 아닌가 하는 느낌이 없지 않지만 말이다.

▦ 오는 11월 20일로 일몰되는 도서정가제 개편을 두고 요즘 논란이 뜨겁다. 2003년에 법제화한 도서정가제는 모든 유통 단계에서 출판사가 정한 가격대로 책을 팔도록 강제하는 제도다. 유통 과정의 지나친 책값 인하 경쟁으로 수요가 적은 문예ㆍ학술 분야 고급 서적의 수익이 줄어 출판 자체가 위축되는 걸 막기 위한 취지였다. 2014년에 모든 도서에 대해 표시 정가의 10% 가격 할인에 5%의 간접 할인(포인트 지급 등)을 포함해 15%까지만 할인이 가능하도록 법이 개정됐다.

▦ 정부는 당초 도서정가제를 큰 변화 없이 유지키로 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데 시장 논리와 도서정가제가 책값을 지나치게 올려 독서 활동이 위축됐다는 이유 등을 들어 청와대 청원까지 나아간 도서정가제 폐지론을 의식해 돌연 전면 재검토 방향으로 돌아서자, 문화계가 거세게 반발하게 된 것이다. 정부가 어떤 결정을 할지는 모르지만, 적어도 좋은 책은 단 1,000권만 출판해도 저자에게 적절한 보상이 돌아갈 수 있도록 오히려 양서 출판 지원책이 강화돼야 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장인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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