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3법 등 정체성 둘러싸고 파열음
‘김종인 1인 체제’ 혁신 한계 드러내
‘좌클릭’ 對 ‘보수 강화’ 논란 정리해야
변화에 저항하는 보수 세력의 논리를 설명하는데 유용한 분석이 있다. 미국 경제학자 앨버트 허시먼이 ‘보수는 어떻게 지배하는가’라는 저서에서 제시한 세 가지 명제다. 기존의 질서를 흔드는 시도는 오히려 정반대의 결과를 낳고(역효과), 달라지지도 않을 것이며(무용), 자유와 민주주의가 위태로워질 것(위험)이라는 주장이다.
수구와의 결별을 내건 국민의힘은 어떤가. 외형적으로는 유연한 보수로 변화하는 듯하지만 ‘반동(反動)의 관성’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허시먼의 분석을 원용하자면 ‘어차피 달라지지 않는다’는 무용 명제는 공정경제 3법을 둘러싼 당내 논란에서 확연해진다. 김종인 위원장이 수용 의사를 밝혔지만 당내 대다수는 이를 ‘사회주의 입법’으로 본다. 재계의 우려는 귀담아들을 부분이 있지만 그렇다고 더 큰 난제인 노동법과 연계하자는 건 처리할 생각이 없다는 얘기나 다름없다. 새 정강정책에 ‘경제민주화’ ‘기본소득’ 문구를 넣은 것은 표를 얻으려는 호객 행위에 불과함을 자인하는 셈이다.
국민의힘 청년위원들의 홍보물 파문도 당이 제자리를 맴돌고 있다는 증좌다. 보수를 개혁하겠다고 나선 청년들이 약자를 비하하고 생명을 희화화한 내용도 문제지만, 그런 SNS 홍보물이 걸러지지 않고 그대로 표출됐다는 게 더 한심한 것이다. 당이 예전과 달라졌다고 생각했다면 그들이 그런 편향되고 극단적인 정치 언어를 사용했을까.
변화를 꾀하는 어떤 의도적인 행동도 사태를 악화시킬 뿐이라는 역효과 명제는 국민의힘이 극우 세력과의 절연을 한사코 꺼리는 행태로 확인된다. 코로나 재확산 우려를 불러일으키는 강성 보수 세력의 도심 집회에도 애매모호한 태도로 일관하고 있다. 여론에 밀려 전광훈 목사를 마지못해 비판했다. 극우 지지층의 거센 반발과 당원 이탈로 이어진 트라우마 때문이다. 중도를 잡기 위한 변화와 혁신이 콘크리트 지지층 이탈이라는 역효과를 낸다는 주장이 먹혀들고 있는 것이다.
국민의힘 혁신의 지체는 ‘김종인 1인 체제’의 한계를 보여준다. 어느 조직이든 위로부터의 일방적 개혁은 벽에 부닥칠 수밖에 없다. 그동안은 당 지지율이 올라가니 가만히 있었지만 정체 상태에 이르자 기다렸다는 듯이 보수 진영 내부에서 반발이 터져 나오는 상황이다. 당헌ㆍ당규를 고치고 광주에 가서 무릎을 꿇고, 당명을 바꿀 때 잠잠했던 것은 그에 동조해서가 아니고 무시하고 방관해서였다.
김종인 개혁의 주된 지원 세력은 당내 초선의원들이다. 국민의힘 의원 103명 가운데 절반 넘게(58명) 차지하는 초선 의원들이 결집하면 당의 환골탈태는 그리 어렵지 않다. 하지만 대다수 초선은 중도 확장 같은 부담스러운 얘기는 꺼리고, 정부여당 때리기에만 열심이다. 과거 당내 변화를 주도했던 '남원정'(남경필 원희룡 정병국) 같은 소장파는 눈에 띄지 않는다. 톡톡 튀며 존재감을 과시해야 할 초선들이 ‘애늙은이’가 돼버렸다.
국민의힘의 가장 큰 문제는 아직 자신들의 지향점을 찾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중도층 지지를 이끌어내야 한다는 당위성엔 공감하면서도 방법론에선 차이가 크다. 당 지지율이 정체 상태인 것은 혁신 부족이 아니라 좌클릭 때문이라고 보는 의원들이 적지 않다. 어설픈 좌파 흉내가 오히려 당을 망치고 있다고 보는 것이다.
국민의힘은 지난달 탄핵 사태 후 처음으로 지지율이 민주당에 앞서는 짜릿한 경험을 했다. 민주당의 실정과 악재로 인한 반사효과가 크지만 당의 개혁 노력이 중도층 유권자들의 평가를 받은 건 부인할 수 없다. 이것이 주는 교훈은 명확하다. 겉치레가 아닌 진정한 변화만이 수권 정당으로의 길을 열어준다는 것이다. 판단은 국민의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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