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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행복을 추구하지 마십시오

입력
2020.10.09 1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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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가까이 작은 팬션을 빌려 '한달 살기'를 했다. 현실에서 최대한 멀어져 상상만 하던 하루하루를 보냈다. 덜 중요한 것은 잊어버리고 좋아하는 것을 하면서 딱 본질에만 충실 하는 거다. 아주 작은 공간은 감당할 수 있어 좋고, 계획 없는 하루는 홀가분하다. 문득 이런 곳에 눌러 앉아 이렇게 살아도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럴 가능성은 거의 없지만, 왜 그런 생각이 드는지는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이른 아침, 먼 산 위로 희고 긴 구름 띠가 올라간다. 계곡에는 물안개가 피어오르고, 골짜기에서는 서늘한 공기가 뿜어져 나온다. "쏴아~" 하며 내려가는 물소리는 크고 우렁차다. 오락가락 하던 보슬비가 갑자기 억수 같이 쏟아지면, 나무 밑에서 굵은 빗줄기를 바라보기도 하고 비를 맞으며 빗속을 걷기도 한다. 도시에서는 하지 않는 행동을 하니 오랫동안 잊고 지냈던 느낌이 살아난다. 자연에 가까이 오니 감정이 고양된다.

눈앞에 펼쳐진 푸른 산이 불만을 사라지게 한다. 한적한 길을 걸으면 금세 마음이 차분해지고 평온해진다. 도시에서 한 시간 걷는 것은 '해야 할 일' 같은데, 자연에서는 '하고 싶은 일'이 된다. 두 시간을 걷는데도 힘들지가 않다. 새벽의 동트는 모습은 아름답고, 창밖을 응시하는 것은 낭만적이다. 창문 사이로 불어오는 바람은 보드랍고, 좁은 방은 아늑하다. 없는 것투성이인데도 부족함이 없다.

하찮아 보이던 것이 하찮지 않아진다. 평소 알아채지 못하던 것에 즐거움이 생기고, 늘 곁에 있는 평범한 것에 감사함이 느껴진다. 소음 없는 시공간은 맑은 정신으로 배회할 수 있는 여유를 준다. '소소한' 기쁨에 관심이 가면서 '찬찬히' 들여다보게 된다. 자연을 만나러 나가는 외출과 내가 선택한 것들을 하는 것으로도 마음이 차오른다. '마음대로 해도 되는' 시간을 갖는 것은 참 근사한 일이다.

여기에 온 진짜 이유를 발견했다. 내가 만나는 풍경이 마음속으로 그리던 것임을 깨닫고, 내가 바라던 행복이 실재하는 것임을 알게 된다. 밖에서 보이는 것보다 내적으로 훨씬 더 뿌듯함을 느끼는 삶을 원하고 있고,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존재하는 시간과 계획적으로 생활하는 시간이 골고루 들어있는 삶에 만족스러워한다는 것을 확인한다.

"행복을 추구하지 마십시오. 차라리 행복할 수밖에 없는 곳으로 인도하는 좋은 습관이나 근면성을 기르십시오." - 최진석, 탁월한 사유의 시선

나는 이제 '해야 할 일'에 쫓겨 '하고 싶은 일'을 잊어버리지 않으련다. 어쩔 수 없는 문제와 이런저런 고민으로 쩔쩔매느라 원하는 것을 뒤로 미루지 않을 테다. 일이 없어도 허전해하지 않고, 사람이 줄어도 외롭지 않을 거다. 누구나 '하고 싶은 것'을 하면서 '느긋하고 여유롭게 사는 삶'을 바라지 않는가. 오늘처럼 내일도 그렇게 산다면 미래가 두렵지만은 않을 거다.

인생은 길지 않다. 삶이 향상되도록 일상을 바꿔야 한다. 마음속에 그리는 일을 일상적인 활동으로 만들어야 한다. 지금 하고 싶고 앞으로도 하고 싶은 것을 루틴으로 정하는 거다. 나만의 일상을 갖는 것은 노력할만한 가치가 있다. 내게 꼭 맞는 삶을 위한 선택은 내가 어디까지 왔는지, 어디로 가는지를 알게 한다. 꾸준한 반복으로부터 얻는 충만감은 생각보다 크다. 삶이 원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심리적 안정감을 주며, 꿈꾸던 삶에 한 발짝 더 다가가고 있다는 믿음을 준다.

일상이 더 단순하고 명료해졌다. 삶의 본질은 하고 싶은 것에 집중하는 것이고, 나머지는 덤이다. 누군가를 만나는 것, 함께 즐기는 것, 맛난 음식을 먹는 것, 멋진 공간에 가는 것 등은 모두 선물이다. 원래의 일상을 엄청나게 다르게 조정하지 않아도 되고, 굳이 멀리 가지 않아도 된다. 일정기간 동안 꾸준히 해보면서 좋아하는지 알아보면 된다. 좋아하는 것을 꾸준히 지키는 일상이 행복으로 안내한다. 나는 좀 더 나다운 사람이 되고, 좀 더 나에게 어울리는 삶을 사는데 필요한 유용한 힌트를 얻어왔다.



이진숙 전 '클럽 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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