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을 해체하는 혼돈의 언어, 시대의 목소리로 나아가다" 루이즈 글릭은 누구

이전기사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기사가 저장 되었습니다.

기사저장이 취소 되었습니다.

"자신을 해체하는 혼돈의 언어, 시대의 목소리로 나아가다" 루이즈 글릭은 누구

입력
2020.10.08 23:00
수정
2020.10.08 23:32
0 0

2020 노밸문학상 수상자 루이즈 엘리자베스 글릭. 사진은 2016년 국가인문훈장 수여식 때의 모습. 워싱턴= EPA 연합뉴스


올해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된 미국 시인 루이즈 엘리자베스 글릭(77). 국내에서는 낯선 이름이지만 미국 현대문학에서는 가장 중요한 시인 중 한 명으로 꼽힌다. 간결한 언어와 1인칭 목소리를 통해 여성의 고통을 시적으로 잘 형상화해왔다는 평가다.

글릭의 시 세계를 연구해온 양균원 대진대 영문과 교수는 8일 “포스트모더니즘적 주제라 할 수 있는 ‘과연 내가 나의 주인일까’라는 문제를, 통일되지 않은 다양한 목소리를 통해 서정적으로 풀어낸다”고 설명했다.

글릭은 1943년 미국 뉴욕에서 태어났다. 사업으로 성공한 헝가리계 유대인 이민자 집안에서 태어난 글릭은 '문청'이었던 부모 덕에 어린 시절부터 언어와 이야기에 심취했다. 10대 때 이미 자신이 직접 지은 글을 잡지와 출판사에 투고할 정도였다.

하지만 청소년기 극심한 섭식 장애와 신경성 식욕 부진을 겪었다. 불안정한 심리상태로 인해 고등학교를 중퇴하고 7년에 걸친 상담치료를 받기도 했다. 글릭은 한 인터뷰에서 “내 인생의 가장 위대한 경험 중 하나”라고 당시를 회상하기도 했다. 글릭은 이 경험을 1968년 낸 첫 시집 ‘퍼스트본(Firstborn)'을 통해 드러내기도 했다. 분노에 차 있으면서 소외감을 느끼는 1인칭 목소리를 내세운 이 시집으로 글릭은 금세 미국 문단이 눈여겨 보는 시인이 됐다.


8일(현지시간) 스웨덴 스톡홀름의 노벨문학상 수상자 발표 현장에 놓여져 있는 수상자 루이즈 글릭의 저서들. 워싱턴=AP 연합뉴스


호평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일부에서는 시인데 어조가 너무 거칠다는 이유로 불편해 하기도 했다. 하지만 전통적 운율을 활용하면서도 구어체로 만들어진 독창적인 작법에 대한 좋은 평가가 더 많았다.

1975년 낸 두 번째 시집 ‘습지대의 집(The House on Marshland)’은 “독특한 목소리의 발견”을 알리는 획기적인 작품이란 평가다. 이후 ‘디센딩 피겨(Descending Figureㆍ1980)’, ‘아킬레스의 승리(The Triumph of Achillesㆍ1985)’를 펴내고 전미비평가상을 받게 되면서 글릭은 “우리 시대 가장 중요한 시인”으로 자리잡는다.

1990년 시집 ‘아라라트(Ararat)’는 글릭 시 세계에서 중요한 전환점으로 기록되어 있다. 다양한 주제를 탐구했던 예전과 달리, 이 시집에서 글릭은 세 명의 여성 캐릭터를 통해 남편과 아버지의 죽음을 구체적으로 다뤘다. 출간 당시엔 큰 관심을 받지는 못했지만 이후 미 의회도서관이 뽑은 가장 중요한 시에 뽑히기도 했다. 이 시집은 글릭 작품 가운데 가장 존경 받는 작품 중 하나로 꼽힌다.

1993년엔 가장 유명한 시집이자 글릭에게 퓰리처상을 안긴 ‘야생 붓꽃(Wild Iris)’을 내놨다. 54개의 연작시를 모은 이 시집에서 글릭은 뉴잉글랜드 정원을 배경으로 봄부터 늦여름까지의 계절변화를 그려냈다. 1인칭 꽃의 시점을 취하면서도 다변적 목소리를 불러낸 이 시집에 대해 평론가들은 “위대한 아름다움의 시”라고 호평했다.

루이스 엘리자베스 글릭 연보. 그래픽=송정근 기자


1인칭으로 자전적 이야기를 다루기 때문에 글릭의 시에는 ‘고백시’란 꼬리표가 붙는다. 노벨위원회 위원장인 안데르스 올손은 “자전적 요소가 있다 해도 고백 시인으로 간주돼서 안된다"며 “글릭은 전 인류의 보편적 실재를 추구하며 신화와 고전에서 영감을 얻을 뿐더러, 이런 특징이 작품 전반에 고스란히 드러난다”고 말했다. 특히 글릭의 작품 중 ‘아베르노(Averno)’를 지목하며 "하데스에게 붙잡혀 지하 세계로 끌려가는 페르세포네의 신화를 몽환적으로 해석한 걸작"이라고 평가했다.

연구자들은 글릭 시 세계의 주요한 주제로 죽음, 상실, 거절, 관계의 실패, 치유와 회복을 위한 시도 등을 꼽는다. 여기에다 서정적이면서도 예민한 시적 목소리가 공적인 것으로 확장되는 데에 글릭 시의 미학이 있다고 평가한다. 양균원 교수는 “사적이지만 자기 중심적이지 않고, 오히려 자기 자신을 해체하는 방식으로 혼돈 속에서 나오는 모든 목소리를 통해 시대의 목소리로 나아가는, 결코 쉽지 않은 작업을 해왔다"고 말했다.

사라로렌스대학과 콜롬비아대학에서 수업을 들었지만 식욕 부진 등의 문제로 정규 학위를 따지는 못했다. 그러나 작가로서의 경력을 바탕으로 미국의 여러 대학에서 후학들을 길렀다. 지금은 예일대 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며 매사추세츠 주 캠브리지에 살고 있다. 총 열두 권의 시집과 에세이를 펴냈다. 아쉽게도 국내에 번역된 책은 없다.

한소범 기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기사가 저장 되었습니다.

기사저장이 취소 되었습니다.

2020 노벨문학상
한국일보가 직접 편집한 뉴스 네이버엣도 보실 수 있습니다. 뉴스스탠드에서 구독하기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