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추석이었다. 예년 같으면 여행을 갔겠지만 올해는 조용히 집에 머물렀다. 인스타그램에는 과거의 오늘에 뭘 했는지 알려주는 기능이 있다. 띵동. 알람이 울렸다. 일 년 전 나는 추석 연휴에 연차를 영끌하여 유럽과 아랍에미리트 아부다비를 여행했다고 한다. 아부다비라니. 코로나가 전 세계 여행 수요를 질식시켜 버린 이 시점에 정말 이질적인 기억이다. 다시 자유롭게 어디든 갈 수 있는 날이 올까? 불과 일 년 전 내가 참 부럽다는 생각을 했다.
어제는 셀프 네일 스티커를 샀다. 외출을 줄이다 보니 네일숍에 가는 대신 혼자 해 볼까 하는 마음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젤 네일 스티커 광고가 카카오톡이며 인스타그램이며 어찌나 많던지 마치 안 사면 유행에 뒤떨어지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만들어져 있는 네일아트를 잘라서 손톱에 붙이고 고정시켜 주는 기계 불빛만 쐬면 나 같이 손재주 없는 똥손도 숍에서 받은 것 같은 네일 퀄리티를 누릴 수 있단다. 셀프로 하는 것이니 가격도 저렴하다. 세상 좋아졌네. 이 시국에도 예쁜 손톱은 포기하기 싫은 나를 위한 아이템이었다. 마스크는 손가락을 안 가리니까.
확실히 DIY가 강세이고 사람들이 집에서 시간을 많이 보낸다는 것을 실감한다. 출근해서 퇴근할 때까지 수천만 개의 상품과 함께하는 이커머스 플랫폼 기획자이기 때문에 어떤 상품이 잘 팔리고 안 팔리는지 관심이 많다. 크루아상 생지로 와플을 만드는 크로플이 히트를 치더니 와플 기계 판매량이 늘었고 캡슐커피와 커피 머신 매출도 쑥 늘었다. 인테리어 매출도 크게 늘었다. 패션 매출은 떨어진다.
일요일 아침마다 대학 친구들과 영어 스터디를 해 왔다. 항상 학교 앞 스터디룸에서 만났었는데 이제는 화상회의 서비스 줌(Zoom)을 이용한다. 줌으로 한참을 떠들고 스터디가 끝났다. 인스타그램을 본다. 집에서 요리를 하는 친구들이 늘었다. 한 친구는 급기야는 한식 조리사를 따겠다고 한다. 집에서 요리를 잘 안 하는 편이었는데 이제는 나도 요리를 좀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같이 모여서 하는 활동들은 죽었다. 작년까지만 해도 관심사가 맞는 사람들이 모여서 교류하는 살롱 문화가 꽃피고 있다는 생각을 했는데 많이 꺾인 느낌이다. 회사 회식도 없어졌고 급기야 재택근무를 시작했다. 솔직히 이건 기쁘다.
코로나 이전에도 비대면은 장기적 추세였다. 하지만 변화가 너무 갑작스럽다. 우리는 마음의 준비 없이 너무 긴 혼자만의 시간에 던져졌다. 건강하게 살고 있는 걸까? 많은 이들이 그렇지 못한 것 같다. 실제로 코로나로 인한 경제적 충격에 더해 사회 활동도 축소되자 우울감을 호소하는 사람들이 늘었다고 한다. 사실은 나도 그랬다. 활동적 성향에 사람을 좋아하는 편인데 답답하다는 생각이 들어 올해 내내 우울했던 것 같다.
하지만 이미 일어난 일은 일어난 일이고 세상은 이미 바뀌었다. 위기(危機)라는 말은 ‘위험할 위’와 ‘기회 기’가 합쳐진 말이라고 한다. 위기 속에 기회가 있을 수도 있다는 뜻이다. 갑작스레 너무 긴 혼자만의 시간에 던져졌지만, 어쩌면 사회 전체가 타인에 대한 강한 의존에서 벗어나 혼자서도 자존할 수 있는 마음을 배우는 시간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아니, 배워야만 한다. 이 시대에서 살아가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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