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염병, 음악의 저항 - 두 번째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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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염병, 음악의 저항 - 두 번째 이야기

입력
2020.10.08 14:30
수정
2020.10.08 1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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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은아
조은아피아니스트ㆍ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게티이미지뱅크


신기하죠. 잠금, 봉쇄, 격리, 고립이 어느새 우리 일상에 윤리와 미덕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무대를 잃은 동료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헛헛한 마음을 감추며 자조적인 농담을 나누곤 합니다. 음악가에게 고립보다 더 좋은 몰입의 환경은 없다. 마늘과 쑥으로만 연명하며 동굴 속 자가 격리를 견딘 태고적 신화를 상기하자. 그렇게 서로를 위로하며 버티어 냅니다. 팬데믹 시대에 음악은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그 돌파구를 찾기 위해 시계를 한껏 돌려 오래된 음악사를 탐험하고 있습니다. 지난 칼럼에 이어지는 그 두 번째 이야기입니다.

음악의 아버지라 불리는 바흐도 전염병에 맞선 음악을 남겼습니다. 1723년에 작곡한 칸타타 ‘내 몸 성한 곳 없으니’(BWV25)는 당시 10만 목숨을 앗아간 마르세유 대역병의 희생자들을 다독입니다. 칸타타는 남녀 혼성 합창으로 비장한 악상을 토해내며 시작됩니다. 불협화음을 가운데 감싸 안은 3음 음형이 사슬처럼 반복되는데, 이 불편한 울림은 몸뚱이를 갉아먹는 병균을 연상케 합니다. 낭독하듯 이어지는 남성가수의 레시타티보엔 아예 직설적 단어들이 등장합니다. ‘고열’ ‘죄악’ ‘페스트’ ‘병균’ ‘해독제’ ‘병원’. 페스트균이 온몸에 퍼지는 고통, 그 절박함을 토로하는 것이지요. 마지막 악절에선 이렇게 절규합니다. ‘이 고통에서 누가 나를 도울 수 있단 말입니까.’

중세부터 시작된 흑사병의 오랜 체험은 점차 미학적 상징으로 예술에 스며들었습니다. 예술가들은 죽음의 공포를 희화화해 극복하기도 합니다. 살아 있는 사람을 유혹하기 위해 묘지에서 해골들이 튀어나와 우스꽝스러운 음악에 춤을 추는 장면을 상상하는 거죠.

작곡가 카미유 생상스를 기억하시나요. 음악 교과서에 빈번히 등장하는 ‘동물의 사육제’로 친숙한 작곡가입니다. 그런데 생상스의 음악 인생 중 청중으로부터 가장 열렬한 환호를 받았던 작품은 앞서 언급한 해골들의 난장과 관련이 있습니다. 김연아가 2009년 쇼트 프로그램의 배경음악으로 선택하면서 한국의 청중들에게도 널리 알려졌던 바로 그 음악, 죽음의 무도(Danse Macabre) 입니다.


'생상스: 죽음의 무도' 유튜브 영상 캡처 (https://youtu.be/z0glOYQBlSA?t=62)


생상스는 문학작품에서 이 곡의 영감을 받았습니다. 그가 음악과 연결한 앙리 카잘리스의 시엔 죽음을 둘러싼 해학적인 풍자가 담겨 있습니다. 발꿈치로 무덤을 박차고 나온 해골들이 바이올린 선율에 맞춰 익살스러운 춤판을 벌입니다. 이때 죽음은 나이와 신분, 직업을 가리지 않습니다. 왕과 귀족, 농부가 해골들과 한데 어울려 떠들썩한 원무를 즐깁니다. 해골들의 뼈가 부딪히는 소리는 실로폰 소리로 삐죽대고, 한밤의 유쾌한 무도회는 스페인풍 왈츠 리듬에 실려 극적인 변주를 전개합니다. 전염병의 공포로 움츠러들었던 대중들에게 작곡가는 이런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었을 겁니다. ‘죽음은 삶의 자연스러운 일부이며 그 누구도 피할 수 없이 평등하다.’

프란츠 리스트도 같은 소재를 활용해 토텐탄츠(Totentanz)라는 작품을 남겼습니다. 생상스는 프랑스어, 리스트는 독일어로 제목을 붙였을 뿐, ‘죽음의 무도’란 의미는 동일합니다. 하지만 문학의 시적 묘사를 음악과 연결시킨 생상스와 달리, 리스트는 음악 본래의 뿌리에 집중합니다. 중세시대 그레고리안 성가의 디에스 이레(Dies Irae) 선율을 주요 모티브로 활용한 것이지요. 지그재그 동선으로 움직이는 이 음형은 주로 죽은 자를 위한 진혼곡인 ‘레퀴엠’에 안착했는데, 리스트는 독특하게도 피아노 협주곡으로 풀어냅니다. 최후 심판의 날, 죄 지은 자에 대한 준엄한 경고를 상징하는 지그재그 음형은 피아니스트를 괴롭히는 고도의 테크닉, 이를테면 반복음의 연타와 옥타브의 널뛰는 도약으로 화려한 변신을 이루게 됩니다.

(‘전염병, 음악의 저항’은 다음 편에 계속 이어집니다.)

조은아 피아니스트ㆍ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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